NZINE

[웹진 6월호] 경주한수원 이강진, 축구선수 16년을 되돌아보다

2018.06.21 Hit : 279

인쇄

[내셔널리그 웹진 6월호]국가대표-한일 최고 유망주 이강진의 삶, 16년의 축구선수는 행복했나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 기성용은 18살에 프로선수가 됐다. 대형 수비수 김민재는 만 스물에 국가대표가 됐다. 더 오래 전에는 한동원, 고명진, 신영록이 16세의 나이로 K리그에 데뷔한 한국 최고 유망주들이 있었다.


한때 이들처럼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던 선수가 있다. 한국을 무대로 성장했던 선수들과는 달리 일본 J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일 두 무대에서 동시에 엄청난 재능을 증명했다. 그의 이름 이강진, 지금은 내셔널리거가 된 이우진.


사진1.png


‘J리그’ ‘국가대표’ ‘풀릴 듯 안 풀리는’ ‘부상으로 기회가 무산된’ 수많은 기사에 언급된 그의 꼬리표. 우리의 뇌리에 이강진은 이렇게 각인됐다. 2004 아테네 올림픽 – 2010 남아공 월드컵 좌절, A매치 기록 취소. 어쩌면 당연하게 박힌 강한 인상의 인식.


팬들의 인식처럼 이우진의 기억 역시 나쁨으로 차있을까. 축구선수 이강진의 삶은 불행했을까. 이우진이 말하는 이강진, 이강진이 말하는 이우진.


”당신의 삶은 행복했나요?“


#내셔널리거 이우진, 행복한가요?


“팬들도 그렇고 동료, 지도자 분들은 아무래도 내가 내셔널리그로 온 것에 많이 놀라신 듯하다.”


“2016년부터 뛴 제주에서 많이 못 뛴 게 사실이다. 조성환 감독님은 평소에도 먼저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이다. 2017 시즌을 앞두고 ‘남았으면 좋겠으나 경기를 많이 뛰는 팀으로 가는 게 현실적으로 너를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노장 선수들은 경기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부담감이 더 커진다. 장기적으로 내 축구 인생을 위한다는 조언을 듣고 2017년 1월 말 2월 초 제주를 나갔다.”


사진2.png


“내셔널리그로 온 건 결론적으로 나를 원하는 K리그 팀이 없었다. 선수로서 K리그에 있는 감독님과 팀에게 어필에 실패한 것 같다. ‘너라면 K리그 2도 갈 수 있는데 왜 내셔널리그냐’ 이런 말도 들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스스로에게도 실망스러웠다. 2017년 초 K리그 1 테스트를 오래 봤다. 물론 K리그 2 포함 제의와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팀을 찾기에는 내가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부족했다. 내가 가보지 않은 리그였기에 K리그 1을 주력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차라리 6개월 쉬고 여름 이적시장을 알아볼까 생각도 했다. ‘축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아직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고 부상도 아닌데 무작정 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경주에 공격수를 위한 마지막 자리가 남았었다. 작년 3월 초에 왔다. 팀에서는 공격수 자리에 너를 투자했다라고 하시더라. 개막 2주 남기고 뛸 수 있는 건 정말 운이 좋았다.”


“생각보다 높은 수준에 놀랐다. 당장 K리그 1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들도 눈에 보인다. 첫 시즌에 우승도 했다. 운이 좋다. 나에게 내셔널리그는 행운이 맞다.”


사진3.JPG


축구선수 이강진을 떠올릴 때 ‘부상’이 생각나는 건 중요한 고비마다 다쳤기 때문이다. 많은 팬들이 기억할 정도로 자신과 대표팀에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2007년 영국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리는 그리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현지에서 발가락이 골절됐다. 2006년에는 아시안컵 예선을 앞두고 국가대표에 발탁됐을 때도 다쳐 중도 하차했다. 그런 이강진은 정말 부상을 달고 살았던 선수일까.


#아팠던 이강진, 행복했나요?


“많은 분들이 거의 매일 부상으로 못 뛰었다고 생각하신다. 최근 제주에서는 내가 부족했다. 부상 이미지가 강한 건 2012년 전북 시절로 그러신 것 같다. 이해는 하나 사실이 아니다. 냉정하게 부상 때문이 아니라 경쟁에서 밀렸다. 내 실력이 부족했다.”


“아마도 중요한 기회를 앞두고 다쳤던 게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동료 선수들과 비교하면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그냥 운이 없다 생각하고 넘긴다. 어렸을 때 당했던 부상은 내 준비가 부족했다. 대표팀이나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욕심에 무리했다. 아픈 부위 강화 운동도 많이 하지 않았다.”


“행복하다. 무엇보다 경기를 꾸준히 뛰니 좋다. 확실히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한다. 오히려 제주 있을 때보다 몸이 좋다. 남이 평가할 때는 모르겠으나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다. 지난해도 연승 중에 광대가 골절돼 시즌아웃됐다. 복귀하니 시즌은 끝나고 팀은 우승했다.”


사진4.png


“다시 K리그팀에게 어필하기 위해 1년 열심히 몸 만들고 우승만 생각했다. 아직 실력 죽지 않았음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마무리 시점에 너무 아쉬웠다. 감사하게도 다시 기다려주셨다. 올해 5월부터야 뛸 수 있었는데 2018년 시작하기도 전부터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내가 내셔널리그에 왔다고 ‘이미 끝난 선수’라고 평가하시는 것 알고 있다. 포기하지 않겠다. 부상, 실력 등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이미지는 내가 바꿔나가겠다. 아직 충분히 할 수 있는 몸상태다. 중요할 때 다쳐서 그렇지 절대 부상을 달고 살았던 선수는 아니다.”


#한-일 최고 유망주 이강진의 삶은 행복했나요?


“잘했던 선수... 솔직히 모르겠다. 또래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건 사실이다.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 그리고 J리그-K리그-내셔널리그 모두 우승해봤다. 좋은 상황도 많았고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상황도 많았다. 당시에는 힘들었다. 안 좋게 생각하는 시절도 많았다.”


“10년 넘게 한국과 일본에서 뛰며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최고였던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한 경기도 못 뛰어도 즐거웠다. 태극마크도 정말 많이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미성년자가 뛸 수 없는데 생일이 지날 때까지도 팀에서 훈련하며 기다려주셨다. 이만큼 좋은 기억을 또 할 수 있을지 모를 만큼 행복했다.”


사진5.jpg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다. J리그 주빌로 이와타에서 K리그 전북 현대로 갔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나쁜 기억은 아니다. 전북은 당시에도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우승으로 좋은 팀이었다. 꿈꿨던 곳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안 맞았다. 솔직하게 일방적으로 내가 일본을 탈출하고 싶었다. 아마 스물여섯 살이었다. 당시 주빌로 이와타는 (이)근호형, (박)주호, 나 이렇게 외국인 선수 3명을 모두 한국인에 투자했다. 신기하게도 셋이 어릴 때부터 친했다. 주호랑은 어릴 적부터 친구다. 당시 근호형이 월드컵에 떨어지고 힘든 시기에 감바 오사카로 갔다. 주호도 유럽 스위스 FC바젤로 이적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면 괜찮았을 텐데 갑자기 우리 셋에서 나 혼자 남으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더 하고 나를 원하는 팀으로 가는 게 순리였는데 팀을 떠나 변화를 주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 가서 친구도 보고 싶고 밥도 먹고 싶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니 외로웠다.”


“다행히 전북 최강희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확정하고 여행을 갔다. 그런데 가이드가 ‘최강희 감독님 국가대표 가시네요?’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내 시작이 잘못됐다. 이흥실 감독님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내가 부족했다. 나를 원했던 감독님이 안 계시니 정신적으로 꼬여도 너무 꼬였다. 센터백 줄부상으로 공격수 (정)성훈이 형이 센터백으로 나올 정도로 팀이 어려웠다. 그때도 출전을 못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이렇게 경기를 못 뛴 건 처음이었다. 현실에 순응하기 너무나 힘든 시절이었다.”


사진6.png


#이우진의 후배들은 행복할까요?


“확실히 한-일 후배들은 다르다. 환경적인 요소가 크다. 일본 같은 경우 여건이 좋다보니 모두가 프로같다. 한국 어린 선수들은 학교 후배같다.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냉정하게 프로로 보이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너희는 돈 받는 대학 선수같아’라고 할 때도 있었다.”


“간단하게 내셔널리그는 팀의 장비담당이 없어 어린 선수들이 한다. 빨래도 선수들이 하니 학교 후배같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선수들도 돈 받는 선수들이니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운동해야 하는데 현실이 이렇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선후배 문화가 있다 보니 어린 선수들이 고생이 많다.”


“해외파 선수들이 유독 장비나 빨래를 많이 얘기한다. 선수들이 ‘내가 프로선수구나’라고 느끼는 건 자신이 받는 대우가 크다. 물론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력이다. 신인들은 선배의 행동을 따라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운다. 영양섭취나 개인 운동하는 선배를 보면 후배들은 따라한다.”


“따로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거나 좋은 말을 해주려는 편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내가 프로의식을 보여주면 후배들이 따라 보고 배울 것이다. 그게 선배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근호형이나 다른 좋은 선배들은 늘 그렇게 우리에게 행동했었다.”


사진7.png


#이우진의 이강진, 행복했나요?


“이강진으로 살아온 날은 행복한 적도 힘든 날도 있었다. 친한 친구가 ‘너는 가장 행복하고 성공한 축구선수의 삶을 산 것 같아.’라고 했다. 그 친구는 10년 전 알게 됐다. 런던에서 유학을 했는데 당시 그리스와의 A매치에서 송종국 선배 대체자로 뽑혀서 나도 런던으로 갔던 시절이다. 하필 나는 경기 전날 훈련 중에 발가락이 골절됐다.”


“다리 깁스를 하고 크레이븐 코티지를 갔다. 입장하려면 관중석을 지나야 한다. 그때 지금의 친구를 만났다. ‘나와 동갑이면서 너무 좋아하는 선수인데 왜 안 풀리지’ 정말 내 팬이었다. 우승 트로피, 내 활약, 거쳤던 팀을 직접 말해줬다.”


“‘너보다 잘했고 행복한 선수는 많겠지만 이미 상위 1% 어쩌면 상위 0.5% 안에도 드는 업적을 가진 굉장한 선수가 이강진이다.’ 그때 친구의 말을 듣고 처음 축구선수로서 행복했다. 맞다. 정말 행복한 선수였다. 일왕배도 제록스컵도, 전북에서 K리그도 경주에서 내셔널리그도 우승했다. 제주, 부산, 수원 모두 명문에서 뛸 수 있었다. 잘된 선수들만 바라보면 불행하다. 세상에는 오히려 평범하고 잘 풀리지 않은 선수가 더 많다.”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8.jpg


#이우진, 행복한가요?

“실패라면 실패지만 지금은 모두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뛰면 뛸수록 몸이 좋아지고 있는 걸 느낀다. 잘 마무리하고 싶다. ‘행복하게 축구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게 꿈이다. ”


“어릴 때부터 잔부상이나 중요한 시기에 넘어지니 부모님이 많이 속상해하셨다. 형은 돈을 주고 이름을 만들었는데 내 이름은 대충 만들었다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공들이지 않았다고 죄책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미신인 줄 알면서도 나 역시 괜한 생각이 싫었다. 이름값으로 축구할 시기는 지났다. 이강진을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9.JPG


“유명한 선수들처럼 멋진 은퇴식을 하는 게 마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후회가 남지 않았을 때, 그때 은퇴하겠다. 일찍 은퇴한 친구들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둔 선수들도 많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선수들이 많았다. 끝낼 준비를 하고 미련이 없다면, ‘나 정말 어릴 때부터 열심히 했구나’라며 후회가 없다면 그때가 내 마무리다.”


“행복하게 사는 게 행복이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게 인생이다. 굳이 불안하게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응원해준 분들에 비해 내가 많이 부족했다. 보답을 못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드시 이우진이라는 이름으로 증명하겠다.”


어제 내린 비는 이우진의 몸을 적시며 간신히 보이던 잿빛 하늘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햇살에 등떠밀려 닫았던 커튼에는 빨강, 파랑, 초록, 녹음이 차츰 살아나는 흑백사진이 있었다.


힘들고 갈기갈기 찢겼던 나의 손바닥에 찾아와준. 그리고 순정에 행복의 비가 내렸다.


사진10.png


#이우진의 아내, 행복했나요?


“행복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훌륭한 남편 덕에 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말도 안 되게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정작 가장 힘든 건 본인이었을 텐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에게 미안해하던 사람이에요. 제주에 있을 때도 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이우진이라는 축구선수와 결혼하고 싶어요. 축구선수는 휴식이 짧잖아요. 보통 집에 오면 쉬기만 해야 하는데 제가 마트 가는 것만 해도 늘 따라 가주려고 해요. 오히려 남편이 저를 많이 도와줘요. 지금은 많이 뛰고 축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 날이 있으면 저런 날도 있지라고 말해줬어요.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것만 했으면 좋겠어요. 남편을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해요.”


글/사진/기획=박상호

목록
  • 실시간 경기기록
  • 내셔널 리그 티비
  • 팀기록
  • 심판기록
  • 증명서발급
  • 경기장안내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웹하드
  • 웹하드
  • 카툰
  • 카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