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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월호] 정철운의 고백, "축구의 소중함 잃지 않았으면"

2018.04.16 Hit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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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 일이 지겨워지는 순간, '언젠가'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감상 젖을 때가 있다. 짧을 때나 그렇지 주야장천 이어진다면 지겹다. 낭만적인 장마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우리 삶으로 투영한다면 마찬가지다. 지겨움은 지루함이 되고 익숙함이 된다. 사소해지고 하찮아진다.


현직 K리그1(클래식) 선수, 코칭스태프, 관계자들은 축구선수에게 1부리그를 "일반 학생에게 서울대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한 무대"로 자주 비유한다. 최근은 더 그렇다. 현대 축구로 발전하고 있고 여건도 좋아졌지만 갈수록 더 치열하다. 매우 당연하다. 수준이 높아지면 경쟁력도 함께 상승한다. 동 실력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선출'이 많아졌다. 흔한 조기축구회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다. 반가운 현상은 아니다. 그만큼 선수들의 은퇴시기가 앞당겨졌다.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진다. 지금은 냉정하게 선수들이 말하는 "내셔널리그도 높은 벽"은 더 이상 엄살이 아니다.


2011년~2012년 대전한수원(現 경주한수원)에서 뛰었던 정철운은 2008년 K리그 신생팀 강원FC의 우선지명 14인 중 하나. 당시 한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졸업생과 내셔널리그의 대표 선수를 강원이 대거 영입했다.


대학 최고 미드필더라 평가받았던 권순형과 울산현대미포조선의 괴물 같은 공격력 중심 김영후, 유현, 안성남, 김봉겸이 함께 영입됐다. 정철운의 축구선수 삶은 그렇게 열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직업은 더 이상 축구선수가 아니다. 이렇듯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글의 주제이자 핵심 구절이다.


1부리그, 내셔널리그, 해외 진출, 은퇴 후 진로. 모든 면이 현직 선수들의 관심을 끌만한, 필요한 경험이다. 다소 불편하고 어려운 기억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입 밖으로 꺼낸 이유는 ‘안타까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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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행복한 기억도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며 무조건 축구선수로 돌아간다.”


성공적인 제 2의 삶을 가고 있다. 가장 잘하고 있는 축구선수 출신 은퇴자 중 하나로 평가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다시, 그럼에도 ‘축구’라고 말한다.


“유명한 사람도 잘했던 선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끝까지 해봤다고 자부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벽을 계속 두드렸다.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자 포기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다. 축구 아닌 삶은 어렵다. 모든 게 똑같다. 지금 축구를 시작한 사람이 우리보다 잘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일을 한다면 덜 자고 덜 먹고 수십은 노력해야 한다. 아쉽게도 은퇴한 사람 중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확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공감한다. 꿈이 없는 것도 비참하지만 안 되는 꿈을 잡고 있는 것도 비참하다.


강원FC에서 잘 풀리지 않고 내셔널리그로 왔다. 내셔널리그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2011년 후반기에 왔는데 뛰어보지도 못하고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군 면제 사유일 정도로 심했다. 2년 가량 있었지만 많이 뛰지도 못했다. 결국 2013년부터 태국으로 갔던 게 인연이 돼 다시 돌아왔다.”


당시 내셔널리그(2011년~2012년)는 2013년 K리그2(챌린지) 출범 전으로 2부리그 격을 수행했다. 14팀으로 6강 PO가 펼쳐졌었다. 지금도 내셔널리그 진출이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당시의 경쟁력은 K리그 못지않다는 평가도 많다. 당시 활약했던 김효기, 고경민, 김인성 등이 현재 K리그의 주축 선수가 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사례가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2년의 내셔널리그를 마치고 태국으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변방이라는 평이 많았다. 소위 동남아시아를 가면 ‘선수 생활은 끝났다’라는 비난도 많았다. 지금에야 열광적인 분위기와 급상승한 축구 산업의 효과로 리그 진출에 탄력이 붙었지만 당시만 해도 아니었다.


“지금도 한국 축구가 싫어 ‘그만두고 동남아나 갈까’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단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지금 내셔널리그와 비교해도 동남아는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름이 없다. ‘용병’ 매 경기 골을 넣고 막아줘야 하는 선수들이다. 언어도 밥도 안 맞는다. 너무 만만하게 보는데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뛸 수 있다면 ‘열심히’ 이 생각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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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선수는 축구라는 좁은 세상에 살고 있다. 빠르면 초등학교부터 가족의 품을 벗어나 합숙 생활을 한다. 당연히 축구와 벗어난 경험이나 비(非)축구인을 만날 기회도 적다. 축구에만 빠져있던 선수들이 은퇴 후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적다.


지도자가 되거나 축구 관련 사업, 그 밖에는 매우 진로 사례가 적다. 즉, 축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과거 실업축구 선수들은 은퇴를 하면 소속팀의 직원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성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셔널리그는 과거 일과 병행하던 것과 달리 전업이다. 은퇴 후에도 계속 소속 회사에 남는 경우도 적어지고 있다. 은퇴의 삶은 냉혹하다. 낭만적이지 않다.


“장어, 소고기, 백숙 이렇게 좋은 음식…. 은퇴하면 절대 못 먹는다. 원정마다 쓰던 호텔? 가본지 정말 오래됐다. 그래도 가능할 것 같다면 오산이다. 초반에야 모아놓은 돈으로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가능하다.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모른다. 물론 잘하고 있으면 돈을 쓰는 건 상관없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축구가 쉽다. 축구하고 싶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실력의 한계보다 후배들의 기량을 보며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잘하는 후배들처럼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후회가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 다시 축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그는 축구와 관련이 없는 의류 사업에 참여했다. 지금은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 골프 및 축구 등 스포츠 사업을 시도하며 또다시 밑바닥을 자처했다. 사실 지금의 선수들이나 은퇴자들이 편한 길을 걷을 수 있던 건 이렇듯 미리 기반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닦아놓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겨울 K리그1 경남FC의 태국 전지훈련을 도왔다. 경남에서 활약하는 후배 한 명이 ‘1~2년 하고 쉽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내가 했던 말은 ‘그런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진짜 열심히 하자. 너보다 실력은 안 좋더라도 할 때가 좋고 축구선수일 때나 대우받지 나오면 끝이다.’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안 되면 빨리 포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만큼 힘들다. 다시 처음부터, 밑바닥부터 올라갈 자신이 있어야 포기도 된다. 선수들은 불만이 많다. 누구나 어떤 직업이든 그렇다. 나도 그랬다. ‘돈이 적다’ ‘대우가 나쁘다’ ‘외박’ 다 알지만 현실의 소중함을 깨닫고 운동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건 축구선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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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회라는 무법천지에 나온 이가 말하는 현실이다.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 후배들의 고민과 불만을 안다. 동시에 그런 생각으로 은퇴한 현실도 뼈저리게 아는 사람이다.


“은퇴한 선수 중에 아쉬워하는 선수도 잘 그만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볼 때는 거짓말이다. 다 돌아가 축구하고 싶은데 괜찮은 척 하는 것 같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버거웠다. 잘하는 축구선수 후배 정말 많다. 나는 그래서 은퇴했다. 선수들이 조금 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은퇴의 현실을 받아들인 정철운은 밑바닥을 택했다. 그는 모든 경쟁은 반드시 진다고 판단했다. 축구가 아닌 건 모두 남들보다 못한다고 생각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이게 은퇴의 현실이다.


“돈을 벌어야겠다가 아니라 용돈 벌자는 생각으로 태국 한인 축구 교실을 만들었다. 솔직히 돈은 안 된다. 하지만 이곳엔 한인축구교실이 없다.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좋아한다. 저변을 넓히는 게 좋다. 하고 싶은데도 방법이 없는 게 왠지 마음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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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 2막이 열렸다. 극으로 치닫아 마지막일 때 새 삶이 열렸다. 그럼에도 그의 가슴엔 축구로 가득하다. 평범한 은퇴자처럼 자만도 해봤고 넘어져도 봤다. 그러면서 일어서는 방법을 깨달았다. 겉보기에는 화려해보이지만 상처를 덮는 굳은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곧 현실이었다. 낭만적이지 않은 은퇴의 삶에 대하여.



“막상 나오면 다 잘할 것 같다. 왠지 자신감이 생기는데 그럴 일 없다. 자리가 있으면 어영부영 흘러가지 말고 죽어라 했으면 좋겠다. 나는 행복하다. 그렇지만 축구할 때만큼은 아니다.”


기획/글 = 박상호(ds2idx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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