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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월호] 3월의 내셔널리그, 이 선수는 알고 보자!

2018.03.09 Hit :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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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울산 왕조가 막을 내렸다. 8팀의 목표는 분명했다. 제 2의 왕조는 자신의 팀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치열했다. 김해시청이 전반기를 무패로 달렸고 천안시청과 목포시청의 반란으로 리그는 성장했다. 난관을 뚫고 마침내 경주 한수원이 첫 우승을 맛봤다.

2018년, 더욱 혼란할 전망이다. 착실한 보강만 있다면 누구든 우승할 수 있음이 증명됐다. 가장 화려할 2018 내셔널리그, 이 선수만은 알고 보자.


◈ 3월 17일 오후 3시 경주 한수원 VS 강릉시청 @경주공원4구장

▲경주 한수원. 주한성 FW 23


마침내 디펜딩 챔피언의 수식어를 안고 시작한다. 하지만 불안하다. 언제나 초호화였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우승의 핵심이었던 고병욱이 대전 코레일로 떠났다. 2017 후반기 고병욱의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미드필더, 측면-최전방 공격수, 심지어는 가짜 9번의 역할까지. 그런 선수를 대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소 높은 연령대의 경주가 고병욱 대체를 젊음에서 찾았다. 꽃다운 미모로 등장했던 고병욱과 배경이 비슷하다. 23번 주한성은 고병욱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최전방 공격수부터 측면, 제로톱 역할까지 수행한다. 빠른 발과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경주 어용국 감독 축구의 필수불가결이다.


어린 고병욱을 데려왔다.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날렵한 축구를 가장 잘하는 곳에서 성장했다. 빠르게 상대 수비를 파괴하는 축구에 주한성은 최적화됐다. 2017년 K리그1 대구FC에 입단했지만 영남대 시절 은사 김병수 전 감독을 따라 K리그2 서울 이랜드FC로 향했다.

주한성 스스로도 프로의 벽을 실감했을 것이다. 26경기를 출전했다. 주축 대우의 기회를 받았으나 활약은 2골 2도움, 미비했다. 성공적인 임대로 K리그1 입성을 꿈꿨으나 다시 임대됐다. 벼랑 끝에 몰렸다. 원 소속 대구와 K리그1 데뷔를 꿈꾸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절박해진 주한성의 발 끝은 고병욱이라는 산을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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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청. 최진수 MF 27


강릉은 특출난 스타 플레이어는 없다. 지난 시즌 경주 한수원의 고병욱이나 김해시청의 지언학처럼 결정적 순간에 좌지우지되는 슈퍼 크랙이 없었다. 단점처럼 보이지만 강릉만의 장점이다. 조밀한 조직력 축구와 짠물 수비를 기본으로 한다. 득점이 적어도 극으로 치닫는 최소의 실점률로 승점을 차곡 쌓는다. 흔히 말하는 강팀의 조건인 ‘꾸역승’을 챙겨간다.


2018년 강릉에는 새 바람이 분다. 조직력과 공격 축구 모두가 가능할 전망이다. 최진수가 왔다. 팀에 개인적 공격 성향을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오세응 감독이었다. 실상은 다르다. 누구보다 득점에 목말랐다. 최진수와 김정주-정훈성이 축구구도의 부활을 알린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태어난 최진수는 K리그1 울산 현대의 유스팀인 현대중-현대고 졸업이 인정하는 유망주였다. 2010년 졸업과 함께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새싹도 쟁쟁한 선배들 앞에서 기를 쓰기 어려웠다. 2011년 1경기, 2012년 4경기에 출장하며 성장이 멈췄다.


2013년 K리그2 FC안양으로 임대를 떠났다. 기회를 얻자 활약으로 증명했고 주전을 꿰찼다. 임대 첫 시즌 2013년 31경기에 출전해 6골 8도움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에 올랐다. 시즌 종료 후에는 안진범과의 맞트레이드로 완전 이적했다. 2014 시즌에도 31경기 출전, 5골 8도움으로 2년 연속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다.


병역 해결을 위해 2016년 안산 무궁화로 향했다. 하지만 입대 당시 최진수는 안양과의 계약이 만료돼 무적 선수였다. 때문에 안양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릉시청으로 왔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최진수도 늦은 내셔널리그가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90년생인 최진수가 K리그에 복귀하려면 반드시 우승에 성공해야 한다. 다행히 그와 함께 김정주, 정훈성 등 리그 수위급 공격 자원이 함께 강릉에 합류했다. 플레이메이커 최진수와 특급 해결사들이 합류한 강릉의 조직력은 분명 한 층 강해졌다.


◈ 3월 17일 오후 3시 천안시청 VS 창원시청 @천안축구센터

▲천안시청. 이정진 DF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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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측면은 매력적이다. 높이가 좋은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활용할 줄 알고 측면에서 중원으로 공격 방향을 바꿔 마무리하는 정석 축구도 곧잘 해낸다. 측면 수비와 공격수의 끈끈한 유대감으로 풀어가야 한다.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측면 수비는 옷이 더러워져야만 한다. 동료가 주목받도록 많이 뛰어줘야 한다.


2018년 그 어려운 역할을 이정진이 책임진다. ‘연습생 신화’ 이정진의 장점은 활동량과 희생이다. 측면 공격수로 프로에 입단해 공격적 능력과 모든 공간을 활용할 줄 안다. 2016년 테스트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했던 이정진은 부단히 노력하며 K리그 챌린지 데뷔에 성공한 연습생 신화를 만들었다. 인상적이었지만 기회는 또 오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2017년 역시 막 승격한 K리그1 강원FC의 테스트를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의 또 한 번의 연습생 기간 동안 재기 구단을 통해 아마추어 선수들과 얼어붙은 인조잔디에서 땀을 흘렸다.


절실함, 활동량, 공격 능력. 이 셋은 모두 갖춘 선수다. 비록 K리그 1에서 내셔널리그, 우승팀도 아니지만 이정진은 다시 간절해졌다. “배우는 자세”가 입버릇이 됐다. 천안시청의 연속 PO 진출, 내친김에 우승컵으로 다시 연습생 신화를 쓸 생각이다.


마침내 2017년 신구의 적절한 조화로 우승에 성공했다. 주요한 순간에 김규태는 없었지만 늘 중요한 역할을 해내며 선수단을 이끌었다. 소통과 리더십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의 역할이 경주의 첫 우승에 키포인트였다. 한국나이로 벌써 서른일곱이다. 대부분의 선수에게는 황혼기다. 그의 함께 뛴 또래 친구들은 벌써 지도자가 됐다.


▲창원시청. 강상민 MF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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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셔널리그 데뷔는 했지만 여전히 강상민은 신인이다. 지난해 후반기 박항서 전 감독이 야심차게 데려온 유망는 이제 풋내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창원의 이기는 버릇이 강상민을 얼마나 성장시켰을까.


박항서 전 감독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창원의 자신의 유산을 남겨두고 갔다. 베테랑 배해민과 임종욱에게 ‘축구를 오래하고 싶다’는 꿈을 안겨줬고 윤병권과 황재현을 든든한 수비로 만들었다. 선수 탓을 하지 않는 박항서 감독은 언제나 부족한 스쿼드가 아쉬웠다. 한 두명이 부상만 당해도 치명적인 얇은 선수 구성을 보완하고 싶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심 끝에 고른 선수가 강상민이었다. 언남고등학교와 연세대를 거친 그는 2017년 K리그2 서울 이랜드FC에 입단했다. 당시 박건하 감독 체제에서 영입됐으나 얼마 안 가 사퇴, 김병수 신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시즌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포메이션 3-4-3, 3명의 수비를 쓰는 최근 축구의 트렌드를 사용했지만 강상민은 그렇지 않았다.


포백 수비를 사용하는 박항서 감독은 강상민을 향해 “중앙 수비 2명만 있으면 알아서 측면에서 해낼 선수”라며 영입 배경을 밝혔다. 박항서 감독의 믿음으로 영입 직후 바로 투입됐다. 전국체전 우승까지 맛봤다. 실제로 강상민은 태현찬처럼 수비와 공격 역할 모두 충실할 줄 아는 선수였다. 높은 연령대와 얇은 스쿼드로 이미 과부하가 걸린 창원에서 강상민은 출전 기회와 우승으로 다시 성장에 불을 붙였다.


“강상민은 어떤 감독이 써도 잘할 선수입니다. 주목해주십시오. 지켜봐주시면 스스로 최고의 선수가 될 유망주입니다.” 박항서 감독이 떠나며 남겼던 말이다.


◈ 3월 17일 오후 3시 대전 코레일 VS 부산교통공사 @대전월드컵보조구장

▲대전 코레일. 권로안 FW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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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차범근이 박지성을 만들었고 제 2의 박지성은 손흥민이 됐다. 수많은 제 2의 손흥민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기대가 좋은 것만은 DKSELK. 이제 막 싹을 틔운 여린 존재를 죽이는 경우가 된다.


무서운 소년 손흥민이 분데스리가에 등장해 자리를 잡아가던 2013년 권로안은 처음으로 독일을 향했다. K리그1 인천유나이티드 유소년팀 대건고에서 3년 동안 12득점을 올렸다. 185의 장신으로 공중 장악 능력이 좋았다. 거기에 빠른 발과 이미 완성된 기술까지 갖췄다. 독일 2부리그 VfL 보훔 초청으로 해외 진출을 타진했다. 보훔은 권로안의 재능을 알아봤고 계약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권로안은 손흥민이 뛰고 있던 함부르크SV 입단테스트에 응했고 결국 제 2의 손흥민이 됐다. 한창 손흥민의 주가가 오르고 있었기에 권로안을 향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크고 작으 부상으로 성장이 더뎠고 결국 2년 동안 멀어진 1군과 함께 독일을 떠났다. 권로안이 다시 문을 두드린 곳은 일본,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였다. 이마저도 십자인대 부상 등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K리그는 불가했다. ‘아마추어 선수가 신인선수 입단 희망서를 제출하지 않고 해외 프로팀에 입단한 경우 5년간 K리그 등록을 금지한다’ 소위 5년룰로 불리는 조항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K3리그 유일 외국인 감독인 졸진이 이끄는 시흥시민축구단으로 향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권로안은 자신감과 출전 기회를 찾았다. 비록 어드밴스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상위리그 진출, 대전 코레일 입단에 성공했다.


2018년에는 김해시청의 남승우, 대전 코레일의 이민수, 목포시청의 강윤구가 5년을 마치고 K리그1 입단에 성공했다. 권로안 역시 충분히 기회가 있음을 알고 내셔널리그에 왔다. 스스로를 ‘잊혀진 선수’라 말했다. 2018년에도 내셔널리그의 재기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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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통공사. 심영성 FW 29


슬프게도 ‘비운’과 ‘천재’는 자주 붙어 다닌다. 과거 故 조진호 감독과 김병수 감독이 부상으로 은퇴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부상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을 졸업하고 성남 일화에 입단했던 심영성도 그랬다.


고교 2학년을 마치고 바로 프로무대로 직행했다.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해도 그 나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 곧 그의 재능을 나타냈다. 심영성은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 함께 출전했던 멤버들은 현재 국가대표와 K리그의 주축이 됐다. 기성용, 최철순, 박주호 등과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2006년 성인이 되어서는 부천SK가 제주도로 연고이전한 제주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겼다. 제주 출신의 심영성에게 전성기가 찾아왔다.


차츰차츰 성장하던 심영성에게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가 찾아왔다. 오른쪽 슬개골이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이었다. 선수 생활이 어렵다는 게 당시 의료진의 소견이었다. 또다시 천재 앞에 비운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년을 넘게 수술과 재활에 성공했고 2011년 6월 복귀했다. 이듬해 5월에는 지금은 대전으로 연고지를 옮긴 인천 코레일과의 FA컵 경기에서 득점하며 3년 만에 천재가 부활했다. 이후에도 심영성은 멈추지 않고 도전했다. 강원FC와 서울 이랜드 FC 등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여전히 뛰고 싶은 심영성이 2018년 내셔널리그로 왔다. 복귀골을 성공시켰던 내셔널리그에서 다시 날갯짓을 편다. 지난 후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뜨거운 가을을 만들었던 부산. 도전 정신 심영성은 2018년에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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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7일 오후 3시 목포시청 VS 김해시청 @목포축구센터

▲목포시청. 김상욱 FW 22


목포의 2018년은 성공이었다. 그들을 향한 무시와 편견을 실력으로 깼다. 축구 자체가 꿈이었던 박완선, 죽어라 뛰던 김경연, 꿈을 위해 수비수로 전향한 이인규 셋이 K리그2 광주FC 입단에 성공했다. J리그 출신 강윤구도 5년룰이 끝나고 K리그1 대구FC에 합류했다. 이제 목포의 목표는 단순 생존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목포는 매년 K리거를 배출하고 있다.


핵심 선수의 이탈은 뼈아프지만 반대로 기회는 더욱 공평해졌음을 의미한다. 김상욱은 2017 자신 스스로에게 굉장히 실망했다. 15경기 1득점 2도움으로 만족하지 못할 성적표를 얻었다. 하지만 출전 수와 달리 총 시간은 길지 않다. 최악의 원정 거리와 경기 일정은 비주전 선수들에게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김상욱은 스스로는 불만이다. 아주 적은 기회는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주로 김영욱을 최전방에 두고 나머지 선수들의 조직력과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로 승리를 쟁취하는 팀 전술은 김상욱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은 아니다. 올해는 2대 감독 김상훈이 합류했다. 2월 초라는 늦은 시기에 지휘봉을 잡아 선수 파악과 전술 구축이 늦다. 이런 상황에서 절치부심에 나설 김상욱의 존재가 신임 감독 입장에섭 반갑다.


2018년에도 목포의 공격은 공격수 김영욱일 것이다. 과부화를 막고 공격의 다양성을 위해 김상욱의 활약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다그치는 제자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목포의 2018년 키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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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청. 박요한 DF 33


이 영입은 조금 놀랍다. 사실 많이 의외다. 우선 임대를 경정한 강원의 결정에 놀랐고 두 번째는 K리그2가 아닌 내셔널리그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김민준을 완벽하게 성공시켜 K리그1 전남 드래곤즈로 보낸 윤성효 감독이라면 이해된다. 강원과 김해는 박요한을 믿는다.


강원은 매년 단단해졌다. 양을 넘어 질적으로도 커졌다. 자연스레 어린 선수들은 기회를 잃는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 잔디를 밟으며 커야할 때 나서질 못하니 더딜 수밖에. 마침내 결정했다. 박요한에게는 이제 뛰는 경험이 필요하다.


박요한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 선수다. 지역 명문 강릉제일고 출신이다. 강원의 유스팀이기도 하다. 주장 역임에 1호 선수까지 박요한은 강원도 축구를 상징했다. 단국대 진학 후에는 다소 체격이 약하다는 평가를 자기 관리와 운동으로 뒤집었다. 실력과 인성 모두 갖춘 그야말로 근본이 탄탄한 유망주다.


그럼에도 박요한은 기다렸다. 2016년에는 승격을 위해 잠시 뒤에 있었고 2017년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라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정말 잊혀버린다. 강원은 안상민과 박요한을 동시에 윤성효 감독이 이끄는 내셔널리그의 김해시청으로 보냈다. 팀 내부에서도 이 둘은 출중한 재능과 노력에도 불가피하게 기회를 줄 수 없는 팀 사정을 아쉬워했다.


김민준의 역할을 이어받는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지 못해 내셔널리그로 왔던 그는 전 경기 출전(PO, 챔피언 결정전 포함)으로 철인상과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성실하다는 장점도 동일하다. 꿈의 내셔널리그는 박요한에게도 동등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주한성, 최진수, 이정진) 이다희 기자(강상민, 김상욱) 대한축구협회(권로안) 정승화 기자(심영성) 강원FC(박요한)

기획/글 = 박상호(park.sangho@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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