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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월호]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내셔널리그 비하인드 스토리

2018.02.13 Hit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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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내셔널리그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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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웹진 2월호] 2017 대한민국 축구는 빛과 그림자가 분명했다. 그중에는 편견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었다. 박항서. 흔히 선수들은 감독에게 ’ ‘감쌤이라는 말을 한다. Mmanager, Coach라 불리는 감독의 역할이 한국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모두가 짜여진 각도에서만 볼 때 박항서 감독은 혼자 다르게 봤다. 그래서 야인이었고 조금은 모가 난 삐뚤한 사람이었다. 틀렸다는 말을 들었던 감독은 선생님의 이름으로 옳았음을 증명했다. 분명 선생 박항서는 옳았다.


축구가 익숙한 이에게 박항서 세글자는 낯설지 않다. 2002 월드컵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4강 역사를 쓴 전설이다. 이름은 몰라도 특유의 냉정한 표정과 탈모로 익숙한 외모가 그를 표현한다. 2006년에는 경남FC 초대 사령탑으로 K리그 4위에 올랐다. 까보레, 뽀뽀 특급 외인과 함께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전남드래곤즈와 상주상무에서도 그의 지도력은 빛났다.

 

박항서 감독의 성공이 대단한 이유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는, 오히려 외면하는 곳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불평, 불만이 없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을 탓만 하는 이들을 꾸짖기도 한다. 그의 올곧은 소신이 2017년 가치를 증명했다. K리그 2도 아닌 내셔널리그의 감독이 됐다. 팀끼리 비교해도 열악한 상황이 더 많은 창원시청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극히 현실주의다. 당장 사용할 카드가 적더라도 무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였다. 박항서 감독은 창원 부임 후 영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재정적 여유가 없었지만 있는 선수를 가지고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창원은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어요. 박말봉 감독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사실 창원은 박말봉팀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만큼 영향력이 대단해요. 당연히 선수들은 새로운 감독이 오면 모두 실직한다고 생각했더라고요. 나는 그럴 생각도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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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부임 후에도 대부분의 선수와 함께 갔다. 보통 새로운 감독이 오면 기존 선수들도 나가는 게 다수다. 특히 장기 계약이 적은 내셔널리그 특성상 더욱 그랬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 영입을 굳이 감행하지 않고 리그를 진행했다.

 

부족함은 풍부함으로 채웠다. 개인 기량이 떨어진 선수들이 많았다. 즉 베테랑은 풍부했다. 이에 베테랑을 필두로 젊은 선수와 함께 지속적으로 자리를 바꾸고 빈 공간을 동료들이 서로 메워주는 조직력 축구를 펼쳤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선수가 20명입니다. 교체할 선수도 없어요.” 적은 선수폭을 오히려 조직력을 키우며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이러니 선수들은 당연히 믿었다. 결국 내셔널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연결하며 부임 반년 만에 내셔널리그에서도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시즌 종료를 앞두고 베트남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 총괄 감독으로 한국을 떠났다. 따가운 시선도 많았다. 우선 베트남에서는 재야의 고수가 아닌 유명 사령탑이 오길 바랬다. 한국에서도 크게 관심은 없었다. 2002 매직은 이미 10년도 지난 이야기였다. 내셔널리그 감독의 베트남행을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다.

 

부임 후 베트남 선수들을 체크했다. “처음에 베트남 선수들을 대상으로 인바디를 측정했어요. 체지방이 부족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특히 상체 근육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베트남축구협회에 호텔에서 안 자도 되니 먹는 것만이라도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했어요. 우유, 생선, 스테이크 같은 고단밸 음식을 매일 먹였어요. 상체 근력 운동으로도 보완했고요.”

 

선수들을 자식처럼 생각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지도를 받은 국가대표 출신 감독은 박항서 감독님은 정말 선수를 가족처럼 챙깁니다. 물론 늘 칭찬만 해주시는 게 아니지만 선수들에게 충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하십니다. 감독님 덕분에 저도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니 선수들은 감독님을 믿습니다. 감독님 말씀대로만 하면 축구도 잘되니까요. 이제라도 감독님의 진가가 알려져 다행입니다.”라며 직접 겪은 박항서 감독의 인성과 지도력을 감사함으로 설명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기자와 약 2시간을 대화했다. 선수들 칭찬부터 조언, 한국축구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충고도 있었다. 사실 대화를 통한 인터뷰는 박항서 감독의 요청이었다. 먼저 만나자는 얘기를 했고 기사가 나가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내셔널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을 앞두고도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기자들과의 만남을 주최했고 사전 인터뷰로 상대를 혼란시켰다. 당시 기자와의 만남을 통해 나눴던 칭찬은 기사로 선수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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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를 대하는 진심은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단 27일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을 통해 박항서 감독은 쌀딩크’ ‘pho체티노라는 별명을 얻었다. 바로 우승후보와 거리가 멀었던 베트남을 결승까지 진출, 준우승까지 거둔 것이다. 1월 베트남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열광의 도가니에서 베트남 국민들은 박항서를 외쳤다.

 

베트남에서도 그의 리더십에 주목했다. 아쉬운 준우승으로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을 직접 챙기며 안아줬다. 선수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베트남은 감동했다. 편견 없이 바라보자 트인 시선을 얻었다.

 

그가 내셔널리그를 떠나기 전 자신의 선수들, 창원시청축구단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남겼었다. 이제야 글로 쓴다. 선생 박항서는 바로 우리 옆에 있었고 냉정한 표정 속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창원 선수들이 정말 착해요. 어쩔 때는 바보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착하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팀에 있어도 이렇게 감독을 기분 좋게 해줘요. 이번 우승은(2017년 여름 내셔널 축구 선수권 대회) 내가 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박말봉 감독님이 만들어 놓으신 기반, 선수들을 제가 잠시 빌렸어요. 우리 선수들이랑 감독님이 해주신 덕입니다. 나보다 이 선수들, 우리 창원 선수들 기사 많이 써주시면 좋겠어요. 나는 화만 냅니다. 그러니 우리 선수들은 내가 없어도 아주 잘할 선수들입니다. 우승 이후에도 내 이야기만 기사에 나오니 미안했어요. 늦었지만 우리 선수들 우승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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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박항서는 분명 옳았다

 

사진=김유미, 하서영, 이다희 기자

기획/= 박상호(ds2idx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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