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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1월호] [ZOOM IN] 맨몸으로 독일행, 양동협에게 철학을 준 유럽

2018.01.16 Hit :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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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웹진 1월호] 맨몸으로 독일행, 양동협에게 철학을 준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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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도전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성공만 하면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확률이 아주 작기에 굳이 도전은 그리 감수할만한 달콤함이 아니다. 여기 이 축구선수는 혈혈단신 [孑孑單身] 맨몸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권창훈, 손흥민이 아니다. 고국 제패의 전리품으로 얻은 초대장과는 다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기에 전쟁터의 공기는 훨씬 차가웠다.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까지 성공해 편한 길을 앞두고 있었지만 과감하게 ‘무모’를 택했다. 양동협이라는 이름에 도전자를 입힌 축구선수는 “독일 덕분에 양동협은 ‘투지’ ‘투혼’이라는 선수가 됐다.”라고 말한다.

꿈이 있는 자에게 자, 이제 누가 바보인가.


당당하게 바보가 된 사람

“성격이다. 항상 무엇을 하더라도 발전과 성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K리그 챌린지 충주 험멜에 있을 때보다 지금 더 성장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스타일도 변했다. 내셔널리그에서도 경쟁하고 계속 경기를 뛰며 발전했다. 배움의 만족감이 항상 먼저다.”


관동대 출신 양동협은 2011년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으로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지금처럼 활동량과 적극적인 수비 개입으로 공격을 이끄는 것보다 직접 공격을 만들고 득점으로 연결하는 날카로운 선수였다. 2013년 K리그 챌린지 출범과 함께 지금은 사라진 충주 험멜의 우선 지명으로 K리그에 데뷔했다. 2년 간 활약한 양동협은 FC안양 고경민(現부산아이파크)와 함께 내셔널리그 출신의 가장 좋은 예로 성장했다.


“계속 한국에 있었으면 더 좋은 팀을 갔을 수도 있다. 훨씬 안정적이고 편하다. 하지만 더 배우고 싶었다. 미드필더하면 유럽이다. 유럽은 최정상 미드필더들이 많다. 무작정이지만 꿈이었다. 너무 배우고 싶어 독일 비행기를 탔다. 성장하고 싶다는 꿈만 있었다.”


“나름의 목표로 독일을 갔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4부, 5부리그를 경험했다. 비록 분데스리가 2, 3를 달성하지 못했으나 많은 경험이 됐다. 축구를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졌다. 단점을 찾았다. 그동안 부족한 수비력이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투지를 찾았다. 간절함이 생겼다. 축구를 다르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솔직히 계속 한국에 있었으면 이만큼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화려한 미드필더에서 죽어라 뛰는 선수로

사실 양동협은 이만큼 많이 뛰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의 활동량을 잘 보여주는 게 사진이다. 경기 중 찍힌 대부분의 사진은 경합이나 수비 가담으로 정면보다는 옆, 뒷모습이 많다. “독일에서 투지를 배웠다. 이만큼 뛰는 선수는 아니었다. 투지가 내 색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뛰는 게 선수다. 도전이 즐겁지만 물론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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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원한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바라지 않는 일이 바라는 것보다 많이 일어나는 게 세상이다. 양동협의 독일 5부리그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깨닫게 했다. “그만큼 힘들 때도 있다. 목표를 다 이룰 수는 없다. 도달하지 못했을 때는 반대로 더 성장을 갈망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을 마주한다. 직시한다. 과거나 미래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다. 축구화 끈 풀릴 때까지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독일은 후회 없다.”


도전을 마친 양동협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전을 마쳤지만 이제 현실이다. 다시 내셔널리그부터 시작했다. 강릉시청 오세응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성공적이었다. 오세응 감독은 그가 독일로 달라진 스타일을 십분 활용했다. 적극적인 공격 개입과 더불어 투지로 수비 가담까지 수비와 공격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도맡았다.


맨몸으로 독일을 다녀온 양동협이 달라졌다. 강릉의 적은 실점과 조직력 축구의 큰 축을 담당했다.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것은 물론 7도움으로 득점왕까지 해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에게 밀렸다. 2차전을 비기기만 해도 우승인 상황에서 패하며 쓰라린 준우승을 맛봤다.


“독일 다녀온 후 행운이 따랐다. 우승에 가깝게 올라갔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항상 생각이 많이 남는다. 시즌 내내 실점도 적었고 경기력도 좋았다. 좋은 추억이지만 평생 나를 따라다닐 아픈 기억이다.”


“축구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경험이 필요하다. 아프면 회복할 시간도 필요하다.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이 노력했지만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2018년 양동협이 2017 준우승팀 김해로 향한다. 2등의 아픔을 겪은 양동협의 경험이 김해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준우승 아픔을 겪었다. 2017년은 2016년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잘못된 판단도 많았다. 아마 김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에서 넘어진 사람은 잃는 게 많다. 많이 대화를 하고 싶다. 이제 고참격에 속하는 나이다. 정신적 지주 역할도 도맡아야 한다.”


89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됐다. 아직 병역 문제가 남았다. 올해 1년 뒤에는 입대를 해야 한다. 마지막인 만큼 도전을 택했다. “1년차에 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을 했다. 올해는 김해가 준우승을 했다. 내년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한다. 2년 동안 강릉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마지막 1년은 새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도전이라면 도전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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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루지 못한 우승이 간절했다. 김해의 목표로 우승이다. 강릉 역시 우승을 목표로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같은 목표이길 바랬다. 우승과 가깝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김해가 딱 맞았다. 무엇보다 윤성효 감독님이라는 전설적인 선수 출신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아직 내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철학


“나이가 들며 리그 우승도 좋고 높은 연봉도 행복하겠지만 하루하루 훈련장에서 후회 없이 땀 흘리자는 게 나의 철학이 됐다.” 그는 줄곧 철학을 언급하는 선수였다. 그럴 것이 웬만한 철학이나 가치관이 아니고서야 편한 길을 두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바보는 없다.

“후회보다 도전 욕구가 강하다. 새로운 도전의 갈망이 크다.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윤성효 감독님이 서른아홉에 은퇴를 하셨다고 들었다. 그 위치까지 도달했을 때는 감독님의 역량이나 성실함, 노하우가 고루고루 녹았다고 생각한다. 선배로서 존경하는 부분이다. 모든 축구선수의 꿈은 오래 재밌게 축구하는 것이다. 그 때가 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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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선택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토록 많이 언급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넌지시 꿈을 향해 “철학이 생긴다면...”이라는 말을 했다.


최근 많은 유망주들이 해외 무대를 노린다. 손흥민, 이승우 선수처럼 빅리그는 아니더라도 축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빛, 철학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많다. 양동협도 마찬가지다. 없이 독일을 떠났지만 채워 돌아왔다. 가벼운 출국이었기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더 일찍 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많다. 사실 분데스리가3 테스트도 있었지만 나이가 큰 걸림돌이었다. 25살이 넘으면 군 문제로 비자가 1년 단기로만 가능하다. 맨몸으로 도전했다. 하지만 생각이 많지는 않았다. 다녀와서는 생각이 많아졌고 철학이라는 게 생겼다. 그동안 써오던 축구일지도 많이 달라졌다.”


“꾸준히 항상 성실한 선수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람은 늘 배운다고 한다. 하나하나씩 철학을 만들고 있다. 신념이라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크게는 리더의 철학. 팬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생각을 가진 선수, 양동협을 보여주고 싶다.”


사진=최선희, 김영일 기자

기획/글 = 박상호(park.sangho@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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