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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9월호] [목포 FA컵 4강] 운전병→ 4강, 박완선의 꿈은 다시 '축구'

2017.09.05 Hit :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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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웹진 9월호] 운전병→FA컵 4강, 축구 접었던 박완선의 꿈은 ‘축구’


풀어버린 끈을 다시 묶으려니 곱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엉킨 축구화 끈이 곧 자신의 마음 같았다. 지독한 축구화 끈은 묶기 힘들뿐더러 풀기도 힘들다. 그래서 잘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축구화를 신으려면 새 끈이 필요하다. 다시, 시작, 박완선과 목포시청축구단의 FA컵 4강은 단숨에 완성되지 않았다. 되돌리기 위해 매 순간이 간절했고 1초가 절박했다. 스물다섯에 축구를 포기했다. 군대를 갔다. 육군 운전병이었다. 3년이 필요했다. 4강이었다. 다시 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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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9일. 박완선의 자서전의 일어날 기, 맺을 결이 무난하게 지나갈 때, 찰나의 바꿀 전이 등장했다. 어쩌면 기승전결의 첫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축구단이 K리그 챌린지 성남FC를 2017 KEB 하나은행 FA컵 8강에서 3:0으로 꺾었다.


위기도 많았다. 오장은-김두현의 베테랑 중원과 홀로홉스키의 강력함이 목포의 골망을 노렸다. 끊임없이 공격하며 이길 수 있게 해준 요인은 강한 수비였다. 든든한 골문이었다. 2017 후반기 등록으로 목포에 합류한 박완선이 고비마다 팀을 구했다. 마지막인 것처럼 태워버렸다.


“너무도 간절했다. 절실했다. 마지막이었다.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축구한다. 지금도 매 순간이 불안하다. 운이 좋은 편이다. 행운이 도와줬다. 좋은 기회가 왔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용인대 출신 박완선의 내셔널리그는 축구 도전 그 자체다. 용인대 출신으로 2013년 울산현대미포조선에 입단했다. 알고 보면 리그 ‘복귀’다. 2013년의 임민혁(現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 2014년의 구상민(現K리그 챌린지 부산 아이파크)과 함께 활약했다. 두 골키퍼가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박완선은 없었다. 누군가의 승리는 누군가의 패배다.


2년 동안 10경기에 출전했다. 스물다섯, 축구가 끝났다. 축구만 해온 박완선이 축구를 포기했다. 군대에 갔다. 축구선수가 육군 운전병이 되는 순간은 참 쉬웠다. 너무나 쉬운 포기였다.


“막군(현역 군대)을 다녀왔다. 육군 현역 운전병으로 보냈다. 25살에 입대해 올 2월 28살에 전역했다. 축구를 포기했다. 도망치듯 군대로 갔다. 포기하니 축구가 그리웠다. 다시 축구가 하고 싶어졌다. 아주 많이. 굉장히.”


“맨날 축구만 하다 다른 걸 하려니 적응도 안 되고 힘들었다. 스트레스도 심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로 행복하게’라는 꿈이 생겼다. 성남FC 원유현이 유소년 코치가 도와줬다. 축구를 원한다면 우선 '춘천 가서 몸 만들어라'라는 말을 해줬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전역과 함께 K3리그 춘천시민축구단으로 갔다. 다시 하는 축구가 너무 재밌었다. 그러다 너무 운 좋게 목포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목숨 걸고 하겠습니다.’ 나에겐 진짜 마지막이었다.”


“정말 운이 좋다. 올 초만 해도 군대에 있었는데 FA컵 4강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쁨을 얻었다. ‘죽기살기’로 했다. 그러자 됐다. 깨달았다.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못 막을 공도 막았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경기를 본 사람들이나 동료들이 활약을 보고 '절실함이 눈에 보였다'라는 말을 해줬다. 매일 군대에서 생각한 게 이뤄졌다.”


FA컵 4강 골키퍼의 전직은 육군 운전병. 다시 축구한지 반년이 안 됐다. 하루아침이 오기까지 박완선에겐 3년의 일몰이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선방 장면을 본 지인들이 하나같이 ‘절실함이 느껴진다.’라며 그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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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4일 18라운드 목포시청이 김해시청에게 2:1 승리했다. 김해의 2017년 무패를 끊었다. 파죽지세의 김해도 박완선의 골문을 넘지 못했다. 5일 뒤엔 4강의 주역이 됐다. 자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래서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그의 신경은 오직 절박함이었다. 축구가 간절해지자 그냥 막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절실함이 느껴지고 8강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은 건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다.


“상대팀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내가 잘해야 한다. ‘실점하지만 말자’고 다짐한다. 상대가 누가 됐건 내 할 일만 좀 제대로 하고 싶다.”


“이렇게나 잘 풀릴 줄 몰랐다. 간절하니 길이 보였다. 김해시청과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데뷔전인 창원시청 전에서는 실수가 많았다. 감도 없고 첫 경기라 정말 못했다. 긴장도 많이 했다. 더 절박해졌다. 스스로 안일해졌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다가는 또 추락한다'라는 불안함이 들었다. 정말 힘들게 다시 한 축구를 놓칠 수 없었다. 골키퍼가 실점하지만 않으면 팀이 패배하지는 않는다. 매 순간, '실점만 하지 말자, 하지 말자'라는 각오로 이 악물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군대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짐을 메고 있는 기분이었다. 계속 축구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리고 더 많이 관심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졌다.”


2013년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에 입단했다. 당시 울산엔 특급 신인 임민혁이 있었다. 그는 2014년 고려대에 진학해 2017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실업→대학→프로의 이력만큼 임민혁의 잠재력은 남달랐다. 자연스럽게 함께 입단한 박완선의 자리는 없었다. 데뷔 시즌 2차례 출전에 그쳤다.


2014년 경쟁 상대가 고려대로 떠났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구상민이었다. 데뷔 시즌부터 23경기를 뛰었다. 조금 나아졌지만 박완선은 8번 그라운드에 나섰다. 구상민은 2년 간 팀의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내셔널리그 최우수 선수상에도 선정됐다. 박완선이 2015년 축구를 포기하고 2017년 다시 간절해지기까지는 힘든 축구가 기폭제였다. 좋아서 하는 축구로 힘들어지자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축구화 끈을 풀었다. 너무 꽉 묶어 풀리지 않자 그냥 잘라버렸다. 다시 묶으려니 2배, 3배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임민혁이 전남으로, 구상민이 부산으로 올라갈 동안 박완선은 포기했다. 그래서 절박했고 탄천의 공기, FA컵 4강의 무게가 절실함으로 융화됐다.


“생각보다 쉽게 축구를 포기했다. 도망치듯 군대로 갔다. (임)민혁이와 (구)상민이는 정말 잘했다. 그 둘을 이기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포기하고 운전병을 할 동안 두 선수는 점점 최고가 됐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된다.’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축구를 해야만 했다.”


“탄천 공기가 달랐다. 분위기도 달랐고 잔디 냄새도 달랐다. ‘같이 뛰었던 선수들은 이렇게 좋은 무대에서 뛰는구나’를 느꼈다. 더 높은 곳으로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조금이나마 어필됐으면 좋겠다. 키가 작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도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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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전남이다. 4강에서 전남 드래곤즈와 해보고 싶었다. 또 같이 지냈던 (임)민혁이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전남이 떨어졌다. 이제는 제일 유명한 수원 삼성과 해보고 싶다. 그 ‘빅버드’라 불리는 곳을 가보고 싶다. 수원은 팬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우리 팬들이 기 죽지 않도록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실점하면 안 된다. 나를 믿어준 팬과 감독님에게 실망시킬 수 없다.”


5월 17일 2017 KEB 하나은행 FA컵 8강. 목포시청이 K3리그 포천시민축구단을 꺾었다. 하위리그와 상위리그의 대결이었지만 포천의 우세가 점쳐졌다. 이에 열성적인 목포 팬들은 끝에서 끝인 목포에서 포천까지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의 열정은 두 경기장 거리인 402.5km를 뛰어 넘었다.


승리에 열광했다. 또 한 번의 새 역사에 서포터즈가 탄천을 찾았다. 응원의 기세는 하늘을 뚫을 듯 높았다. 성남 팬들보다 빨리 도착해 가장 늦게 경기장을 나간 응원단이었다. 박완선의 가슴이 필라멘트처럼 번쩍거렸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팬들을 위해 절대 질 수 없었다.


전반전 목포 팬들을 업고 경기에 나선 박완선은 선방쇼로 보답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응원에 신이 나 잔디에 올라탔다. 팬은 박완선을 계속 축구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다. 성남 팬분들보다 수가 적어도 목소리는 더 컸다. 후반전에는 성남 서포터즈 석으로 골대를 썼다. 성남 팬들이 아유와 욕을 많이 했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다. 성남 목소리는 잘 안 들리고 목포만 들렸다. 우리 소리만 들렸다. 우리 팬들이 멀었지만 더 선명했다. 선수들은 응원해주신 만큼 승리로 보답하려는 마음뿐이다. 절대 패배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팬과 함께 가족과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 감독님이 실력 없는 나를 믿고 기회를 주셨다. 빨리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만 든다.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에게도 전화가 왔다. 많이 무뚝뚝하신데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잘했다’ ‘앞으로도 더 잘할 거다’라고 격려해주셨다. 다 보답해야하는 팬이다.”


25살에 축구를 포기해 군대를 갔다. 28살 2월에 전역해 8월 FA컵 4강에 진출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스포츠에는 각본이 정해져있었다. 하나씩 짜 맞춰진 뻔한 이야기는 절실함 앞에 무력했다.


“지금도 힘든 선수들이 많다. '포기하지마'라고 말하겠다. K3리그나 조기축구회를 가서라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온다.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하고 싶다면 그만큼 절박하게, 어떤 기회라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진짜 간절하다면. 나처럼 힘든 선수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나도 했다는 걸 보며 위로가 되길 빈다. 2년을 쉬었으니 남들을 따라가려면 2배, 3배 이상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기회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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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들어가기 전 유벤투스의 지안루이지 부폰 골키퍼 동영상을 본다. 저런 상황이 오면 ‘꼭 부폰처럼 해야지’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오면 비슷하게 행동한다. 목포시청만의 지안루이지 부폰이고 싶다. 목포에서 다시 기회를 받았다. 목포에서 오래 하고 싶다. 항상 궂은 날씨에도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정말 감사하다. 다시는 포기하지 않는 선수 되겠다.”


글 = 박상호 기자(ds2idx99@daum.net)

사진= 오지윤 기자, 대한축구협회, 박완선 선수 본인 제공, 하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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