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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6월호] ‘내 뒤에 공은 없다’ 부산교통공사 김선규

2017.06.12 Hit :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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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선수 혹은 중고 신인에게 꿈을 묻는다. 열에 아홉은 더 높은 곳, 꼭 지금보다는 좋아진 실력으로 활약하는 것이다. 이제야 시작하는, 다시 뛰는 축구를 더 잘해서 행복하길 바라는 신인들이다. 하지만 이 신인은 좀 다르다. 프로 데뷔 10년을 채우지 못한 내셔널리그 신인 골키퍼의 꿈은 ‘은퇴’다.


박상인 감독이 떠나고 김해시청 사령탑을 지낸 김한봉 2대 감독이 부산교통공사에 부임했다. 5회 전국체육대회 우승팀이자 2013, 2014, 2015 3회 연속 우승팀으로 토너먼트의 강자로 거듭난 부산은 지난해 2016년 4회 연속 우승도 놓쳤다. 리그는 8위로 떨어졌다. 수습 필요한 김한봉 감독은 골키퍼부터 베테랑으로 수급했다.


부산 출신으로 당감초등학교, 해동중학교, 동아고등학교, 동아대학교까지 부산에서 축구를 시작하고 배운 토박이 김선규가 마침내 고향으로 왔다. 경남FC와 대전 시티즌, FC안양까지 그의 프로생활은 7년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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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번호는 ‘87’ 1987년 10월 7일생인 김선규는 자신의 출생년도를 백넘버로 정했다. 이제 서른을 넘겼다. 그와 동갑 골키퍼 J리그 세레소 오사카 김진현도 87년생이다. 2012년에야 A매치에 데뷔했고 2015 아시안컵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렇듯 골키퍼는 대기만성으로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빛이 난다. 이제 막 빛을 볼 87년생의 신인 골키퍼가 남다른 꿈을 향해 무덤덤하게 걷는다.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10월, 8월, 6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단호했다. 김선규의 축구는 확실히 2017년 끝났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고향팀으로 왔다. 현재 부산교통공사는 내셔널리그 1승 4무 8패 승점7점으로 8위 최하위다. 연승 한 번이면 충분히 치고갈 수 있지만 신예가 많은 팀의 특성상 반전이 어렵다. 김선규는 축구가 끝난다고 해서 마지막을 절대 대충 넘길 생각이 없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다.


“색다르다. 내셔널리그는 처음이라 여러 다름을 경기장에서 느꼈다. 부산 자체가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다. 마무리가 잘 안 된다. 공격이 약하다. 득점도 적다. 선수들 자신감이 올라올 기회가 적다. 아직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다. 상황판단도 약하다. 공격이냐 수비냐 결정하는 부분도 못한다. 많이 도와주려 하는데 내가 부족한 선수라 그렇다.”


김선규에겐 출전 자체가 꿈이었다. 2010년 K리그 경남FC에 데뷔했지만 김병지라는 거대한 산을 뚫기 어려웠다. 2012년으로 약속의 땅대전으로 향했다. 35경기를 뛰었다. 20대 초반 골키퍼 김선규의 꿈은 출전이었다. 마침내 이뤘다. 팀의 레전드 최은성을 밀어냈다며 팬들의 비난도 받았지만 묵묵한 그의 성격은 출전이라는 꿈만 생각했다.


3년을 대전에서 보냈다. 강등도 겪었고 승격도 맛봤다. 하지만 팀과의 불화로 FC안양으로 옮겼다. 출전이라는 목표가 은퇴라는 꿈을 만든 순간이었다. 김선규는 오히려 그때를 후회한다.


“대전이 20년 축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출전해봤고 축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으로 강등도 느껴봤다. 우승으로 승격할 때는 10경기 남고 뛰다 못 뛰다 반복했다. 나 스스로도 팀에 대한 불신도 있고 당시 사장님이랑도 사이가 나빴다. 객기가 있었다. 팀에 남아 풀고 도전해도 되는데 굳이 어린 나이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 선택이 가장 잘못됐다.”


“가면 갈수록 안 풀렸다. 매년 더 힘들었다. 올해가 가장 힘들었다. 그냥 축구를 그만할 생각이었다. 지나고 보니까 2년... 2년 정도 행복했던 것 같다. 대전을 나오며 군대를 미뤘다. 겨혼을 했다. 28살에 갔어야 했다. 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지금 축구도 군대 때문에 그만 둔다. 사회복무요원으로 K3리그를 가면 2년 더 길어지겠지만 군 복무만 마치면 축구는 끝이다.


지금 김선규는 현역복무대상 신체등급이다. K3리그에서 뛰기도 어렵다. 재검사를 통해 방법을 찾고 있지만 확신할 수 없다. 모든 걸 포기하려는 상황에서 선택한 건 고향이었다. 동아대학교까지 모든 학창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김선규는 성인 선수가 되고 처음으로 부산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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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운동장도 익숙하다. 부산 축구를 보며 자랐다. 부산 아이콘스를 봤고 구덕에서의 ‘부산의 봄’을 지켜봤다. 대학 시절엔 직접 뛰어 보기도 했다. 올해는 K리그 챌린지 부산아이파크도 구덕운동장에서 경기를 가진다. 토박이 김선규는 구덕의 봄에 기여하고 싶다.


“나부터 발전해야 한다. 밑부터 막아줘야 위가 잘 풀린다. 부산 아이콘스도 구덕도 모든 게 익숙한 곳이다. 사직보다는 구덕이라는 곳이 나에게는 더 가깝다.”


“올해가 마지막이다. 미련 없다. 마무리도 계속 꼬여서 아쉽다. 군대를 앞두고 그만두려는 건 ‘내가 여기서도 안 되는데 뭘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이다. 마무리만 잘하고 싶다. 잘됐으면 좋겠다. 고향팀에 왔다. 도움이 되고 싶다.”

“구덕운동장을 대학 이후 처음 뛰었다. 많이 새롭다. 우리가 잘해서 구덕과 부산의 축구붐이 다시 일어나면 좋겠다.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막전 이후 도무지 승리가 없어서 많이 죄송하다. 내셔널리그지만 많이 보러 와주시는데 홈 승리가 없었다.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한다. 군대 가기 전까지 꼭 홈 승리를 선물하고 싶다.”


박승민, 이용승, 김영삼 등 베테랑이 있지만 신예도 상당히 많다. 유인웅, 김균호, 김진수처럼 첫 성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 선수들이 선발 라인업 절반을 채울 때도 많다. 김선규는 후배들의 마음을 안다. 2년을 벤치에서만 보내봤고 힘들고 기쁘고 어려운 많은 경험을 했다.

“골키퍼라 밑에 있어 많은 얘기를 못해줘 아쉽다. 차근차근하면 좋아질 것이다. 공격에도 경험 있는 선수들이 많다. 그래도 경험 없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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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너희는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다’ 내셔널리거는 실패한 선수도 성공한 선수도 아니라고 얘기했다. ‘재수생’이라고 불렀다. 다시 하면 된다. 내셔널리그에서만 있으려고 평생 축구한 게 아닐 것이다. 현실적인 얘기도 필요하다. 군대를 해결하면 직장이 되겠지만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다. 좋게 얘기를 해줘도 아직 어리다 보니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어릴 때 그랬다. 만약 지금 생각으로 어릴 적 생활했으면 더 큰 선수가 됐을 것이다. 후회된다. 내가 잘못한 거도 후배들에게 오히려 더 많이 얘기해준다. 나같은 실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후배가 선배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겁주는 역할,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김선규의 마지막 축구는 10월. 리그를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난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대충은 없다. 반드시 유종의 미로 잘 마무리 하고 싶다. 시작보다 중요한 게 끝이다. 사회로 돌아가는 김선규의 첫 시작은 축구선수 김선규의 마지막이 결정한다.

“7월 전체전 예선이 생겼다. 9월 10월 전국체전을 올려놓는 게 목표다.”


“시작한 곳에서 그만둔다. 조용히 나가고 싶다. 더 불태워야 한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도움이 좀 돼야한다. 올해가 마지막이다. 마무리만 잘하려는 생각이다. 축구를 접고 사회로 나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축구는 여기서가 마지막이다. 많이 힘들었다. 쉬고 싶다. 몸, 마음상태가 계속 선수로 살기는 힘들다.”


“나보다 더 빨리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지도자도 있고 사회 나가서 축구하고 상관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보여준 걸로만 사람들이 판단한다. 마무리니까 욕심 없다. 그렇다고 못해서는 안 된다. 최선으로 마무리하겠다.”


여느 꼬마처럼 축구를 막 좋아하지는 않았다. 여느 프로 선수처럼 국가대표를 꿈꾸지도 않았다. 어쩌면 김선규는 가장 축구다운 축구를 했다. 힘든 일을 도맡아야하는 골키퍼 자리에서 한 번도 욕심내지 않았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김선규가 더 담담한 이유다. 단 한 번도 과욕을 내지 않고 팀을 위해 희생했기에 정리하는 20년의 축구가 오히려 후회가 없다. 그의 진짜 축구가 2017년 끝났다.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한 마디 따뜻한 말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김선규는 정말 고생 많았다


“좋은 선배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생각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하며 같이 있다 헤어져도 생각나는 사람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 있었다. 사람끼리 하는 축구인데 좋든 나쁘든 기억나는 사람이면 좋겠다. ‘저런 형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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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나이 먹으면서도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게 꿈이었다. 그게 평생 해온 축구건 아니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운동했다. 아직 친구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말을 안 해도 사정을 다 아는 친구들이다. 이제 사회를 나가니 푹 쉬고 남은 인생 잘 꾸려나갔으면 싶다”


“20년을 축구했다. 남은 20년은 어떨까 모르겠다. 가끔씩 어떨까라는 생각은 해봤다. 기대보다는 무섭다. 배운 것도 축구고 할 줄 아는 게 축구다. 남은 인생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획/글 = 박상호(ds2idx99@daum.net)

사진 1, 2, 3=하서영 기자

사진 4 = 최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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