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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월호] ‘조기축구 신화’ 다시 태어난 서인덕을 만나다

2017.02.01 Hit :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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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은 늪과 같아서 벗어나려 할수록 스스로를 더 깊숙한 곳으로 몰아넣는다. 힘들 때 다가오는 달콤한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이 되고 벗어나려는 발악마저 무위에 그친다. 작은 위로마저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빛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시 일어날 방법은 있을까.


절망을 환희로 바꾸는 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는 말이 있다. 몸으로 눈으로 직접 차디찬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역경의 시련만큼 좋은 경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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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하고도 여섯 해를 보내고 비로소 성인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20대의 절반이 부상으로 어두웠다. 축구를 포기해야 했다. 포기가 강요됐다. 하지만 축구를 포기하려 할수록 더욱 축구에 빠졌다. 피, 땀, 눈물로 재활에 나섰고 경기 감각을 위해 조기 축구에 나섰다. 축구 명문 한양대학교의 유망주에게 이제 축구는 조기 축구회였다.


"십자인대 부상이 축구를 하는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축구를 포기하기엔 아직까지 내가 축구를 너무 좋아했다. 포기하려 하는 찰나에 공을 만지면 다시 축구가 좋아졌다. 다시 하고 싶어졌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너무 좋은 날이었다. 좋은 학교에 갔고 1학년이 4학년 경기에도 뛰었다. 물론 대학교 때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정말 고난은 무릎 수술이었다. 회복 후에도 예전만큼 못했고 부상 후유증으로 잔부상이 많아졌다. 그렇게 난 취업도 못했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서인덕은 축구 유망주로 행복한 날을 그려갔다. 부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에게 찾아온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고난은 이십대 초반 서인덕이 이겨내기엔 크나큰 고통이었다. 부상의 정도가 심해 좋아하는 축구마저 못했다. 잔부상이 늘 따라다녔고 결국 취업에 실패했다. 그에게 남은 선택권에 '포기'라는 새 글자가 나타났다.


"집-운동-집-운동.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공만 차면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기 축구회로 갔다. 축구가 너무 재밌었다. 축구를 배우던 시절에 비하면 힘든 것도 많았고 여건도 부족했지만 다시 축구를 하면 정말 행복했다. 결국은 내가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포기하지 못한 것 같다. 의지가 강하기보다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다."


다시 축구화 끈을 묶은 순간부터 서인덕은 한 번 더 해보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조기 축구지만 곧 나아질 미래를 그렸다. 그럼에도 포기의 그림자가 함께 그를 따라다녔다. 재밌지만 포기를 여전히 고민했다. 많은 고민 속에서도 축구공을 잡은 서인덕에게 마지막 동아줄이 내려왔다. 내셔널리그 공개 테스트.


"용인에서 같이 뛰었던 (박)종오가 한양대학교를 같이 나왔다. 축구는 재밌었지만 포기하려는 순간도 많았다. 접으려고 생각할 때마다 종오는 왜그러냐고 재능이 아깝다고 한 번 더 해보자고 위로해줬다. 당시 내셔널리그 공개테스트도 나는 몰랐다. 그것도 종오가 말해줘 참가했다. 공개 테스트라는 기회가 있으니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해보자는 말에 다시 뛰었다. 분명 운이 좋았다. 나는 확실히 운이 좋았다. 하지만 기회가 와도 잡으려면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나에게 테스트라는 행운이 따랐지만 뛸 수 있는 몸이 돼있던 게 중요했다."


"'나는 여기서 살아남아야겠다' '무시 받으면 안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준비했다. 1년 준비한 것만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같이 한 친구들도 성실했고 의지도 강했다. 어떻게 1차 붙더니 최종까지 가서 용인시청 김종필 감독님의 부름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정말 믿기지도 않았고 너무 기뻤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심한 부상도 당했는데 뽑아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조기 축구회 회원이 '낫소 2014 내셔널리그 공개테스트' 합격생이 됐다. 스물여섯의 늦은 나이로 첫 성인 무대가 열렸다. 포기하려던 수많은 시간과 고민의 1년이 합격이라는 귀중한 선물로 바뀌어 돌아왔다. 늦깎이 신인이 탄생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용인시청은 김종필 감독을 2대 감독으로 선임하며 새 그림을 그려갔다. 서인덕을 선택한 김종필 감독은 "대학 최고 유망주 서인덕이다. 무릎이 다쳤다고 1년을 쉬었다고 기량 어디가지 않는다. 2015 내셔널리그 크게 일 낼 선수다. 기대해도 좋다."는 말로 영입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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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를 위해 술을 끊었다. 자제하고 절제했다. 밤 늦게 안 놀고 진짜 선수처럼 집-운동-집-운동 했다. 사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학 졸업하고 팀을 못찾아 술 먹으러 다니면 다신 돌아올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설령 팀에 들어가도 모두가 좋게 안 보고 낙오된다. 또다시 낙오되면 '아 왜 내가 낙오됐지'하며 또 술 마시고 이게 악순환이다. 분명 이유는 있다. 못 뛰는 선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기 자존심 세우며 내가 쟤보다 좋은 선수인데 왜 안 뛰게하지라고 생각할 시간에 개인 운동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스스로 이유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


"늦게 시작한 성인 무대라 긴장도 많았고 여유도 없엇다. 다시는 뒤쳐지지 않겠다, 낙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여전히 몸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술도 먹지 않고 내 재능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감독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파악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경기를 뛴다. 감독님마다 성향이 다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다. 경기를 뛰려면 감독님이 원하는 선수가 곧 나라는 것을 훈련 때 보여줘야 한다."


"첫 1년차 목표는 '출전'이었다."


출전이 목표였던 서인덕은 동계 훈련에서 성실한 모습으로 김종필 감독의 전술판에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측면 공격을 필두로 전술을 사용하는 김종필 감독에게 서인덕은 좌, 우 측면 공격 모두 활용 가능한 중요 자원으로 급부상했다. 출전이 목표였던 서인덕은 개막전 출전을 시작으로 20경기 2골 3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이타적인 성향과 활동량은 최하위 용인을 4강 PO를 위협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테스트 전까지는 이렇게 행복한 1년은 생각 못했다. 이정도면 될까도 아니고 아예 안 될 것 같았다. 1년이나 쉬었고 부상이 워낙 심했다. 조기 축구회를 나갔다지만 경기 감각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동계를 앞두고 한 경기 출전을 목표로 열심히 했다. 다행히 감독님이 좋게 봐주시고 기회를 주셨다. 운이 좋았다."


"측면 공격수 개념을 바꿔주셨다. 내가 공간을 만들어 패스하고 크로스하면 내 역할은 끝났다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했던 것이었다. 조직적으로 라인을 잘라 경기를 풀어가니 축구가 달라졌다. 내가 했던 축구는 반쪽짜리였다."


"내 능력이 특별하다거나 잘해서 얻은 기회가 아니다. 감독님이 고등학교시절부터 지켜봐 주셨다. 그냥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공개테스트 열심히 준비하며 마침 몸이 좋은 상태였다. 1년 준비하고 1년 경기를 뛰며 느낀 건 기회가 와도 잡으려면 스스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 하니만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분명 운도 좋아야 한다. 공격수에게 2골 3도움은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행운을 잡을 준비가 돼있어야한다. 많이 부족했지만 노력이 없었다면 1경기 출전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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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시즌 말미부터 부상의 후유증이 다시 찾아왔다. 컨디션과 경기 감각은 좋아졌지만 1년의 공백기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내기엔 꽤 큰 시간이었다. 팀은 점점 4강과 멀어졌고 PO마저 진출에 실패했다. 기대 이상의 6위로 마감했지만 모든 선수들이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서인덕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부정적인 것은 서인덕의 컨디션 난조가 2016년 계속 이어졌다. 생각만큼 풀리지 않았고 건강도 다시 악화됐다.


"부상 당시 진짜 힘들고 부모님께 화도 많이 냈다. 정말 힘들고 몸도 안 좋았는데 감독님께 몸이 안 좋다고 얘기도 못했다. 축구는 하고 싶고 몸은 안 따라주고 참 어려웠다. 많이 힘들었다. 진짜 힘들었다."


"안 좋은 기억이 2년차에도 떠올랐다. 2015 시즌 말부터 잔부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시즌 개막 후에도 계속 안 좋았다. 복귀까지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지 무리가 따랐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쉬다보니 감독님 눈치도 보이고 팀 성적도 안 좋고 동료들 눈치도 보였다. 4연패했고 팀이 최하위에 있을 때도 전혀 도움이 못됐다. 시즌 중반에는 용인이 내년에 없어진다는 얘기가 들려 조급해졌다. 그러니 회복도 안 된 기간에 경기에 무리하게 나섰다. 그래서 또 부상 당했다. 팀을 구해야했다. 재활센터에서 한숨만 쉬면서도 팀이 걱정됐다. 나도 걱정됐다. '이제 나는 또 팀이 없겠구나' 2016 시즌은 최악이었다."


조기 축구 신화를 쓴 공개 테스트 합격생은 다시 좁은 취업의 문 앞에 섰다. 2년의 내셔널리그를 거치며 취업난은 더 심해졌다. 무엇보다 이미 실패를 맛 본 서인덕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은 배로 따갑고 차가웠다. 다시 또 팀이 없어졌구나라는 넋두리가 한숨이 되기까지. 처음부터 다시 도화지를 펴야할 때 목포시청 김정혁 감독이 다시 그의 손에 물감을 전해줬다.


"용인이 해체됐다. 다시 무적 선수가 됐다. 한숨을 푹 쉬고 있는데 휴대폰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인덕아 선생님 목포시청 감독인데 연락 한 번 줘라' 목포시청 김정혁 감독님이 용인시청의 김희호 코치님 통해 연락처를 구했고 직접 연락을 주셨다. 또 운이 좋았다. 두 분 다 나를 좋게 봐주셔서 좋은 기회가 왔다. 김정혁 감독님은 '너가 무릎이 많이 안 좋은 것도 알고 있고 너의 재능이나 활약상을 다 알고 있다'며 좋은 말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공개테스트 당시 나 역시 너를 원했고 골랐는데 이제라도 나랑 다시 해보지 않겠니. 너만 결정해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를 아직도 믿어주는 분이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고민도 안 했다. 나는 김정혁 감독님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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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다시 재밌게 축구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다. 좋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2년 전 첫 성인 무대 목표는 주전경쟁. 살아 남는 거였다. 2년차에는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싶었다. 3년차인 지금은 경기에 나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풀시즌을 소화한 적이 없다. 워낙 감독님께서 많은 배려를 해주고 계신다. 2경기, 3경기를 뛰더라도 장기간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목포가 나이 격차가 크다. 내가 팀에서 3번째로 나이가 많다. 어린 선수들이 많다. 그럴수록 선수단 소통이 중요하다. 물론 경기장에서 뛰는 거는 선배고 후배고 없다. 다 똑같다. 조건은 똑같다. 그러니 소통이 안 되면 힘들다. 용인에서 소통 문제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선배는 후배를 잘 이끌어주고 후배는 선배를 믿으며 목포를 하나로 만들고 싶다. 축구는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팬들께 좋은 경기력 보여주고 싶다. 감독님께도 보답하고 싶다."


"소통 등 부족한 부분은 동계 훈련으로 차차 채워갈 예정이다. 다른 팀이 목포를 상대했을 때 '목포랑은 경기하기 싫다' '너무 껄끄럽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끈끈한 팀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팬들에겐 재밌고 선수들에겐 끈질긴 선수로 올 시즌 우승컵을 힘차게 들고 싶다."

20대의 절반은 어두웠다. 힘든 부상으로 팀은 물론 좋아하는 축구마저 포기해야 했다. 조기 축구회까지 선택하며 마지막 끈을 잡았다. 공개 테스트 합격 신화의 선두주자였다. 스물여섯 나이에 첫 소속팀이 생긴 그에게 그와 닮은 후배들이 눈에 밟힌다. 당시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갈수록 뛸 수 있는 팀은 줄고 있다.


"1, 2년차에는 감독님이 요구하는 것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많이 조급했다. 용인 입단 전에는 이대로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힘들었다. 공개 테스트 합격 후에는 살아남아야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2년차에는 1년차만큼 못해 다시 낙오될 것 같았다. 많이 힘들기도 힘들지만 스스로 고민을 너무 많이 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벌써 3년차다. 이제는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님이나 동료들이 많이 믿어주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좋아하는 경기력을 증명하고 싶다."


"나는 꼭 잘 해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포기한 선수들이, 부상으로 힘든 선수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막막한 어둠을 걷는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이렇게 한다고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 꿈만 믿고 가기엔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결국 공개 테스트도 합격했고 내셔널리그도 3년째 뛰고 있다. 나도 했으니 다른 선수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줘 '나도 저 선수처럼 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5, 6개월은 계속 생각하고 운동하며 고민했으면 좋겠다. 힘들다고 당장 포기하지 말고 최소 반년은 어떤 방법이건 축구에 다시 미쳤으면 좋겠다. 그래도 진짜 아니다 싶으면 그때 포기하는 게 맞다. 주위 선생님 충고도 듣고 가족과 많은 얘기로 어려움을 풀어가면 좋은 방법이 나온다. 항상 조급하면 선수 입장만 안 좋다. 분명 후회도 생긴다. 후회 없을 때까지 계속 했으면 좋겠다."


"어릴 적부터 했던 축구를 포기하는 건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때 무너진다면 완전히 끝난다. 힘들 때 포기하는 것만큼 쉬운 길이 없었다. 좌절해 나락으로 떨어지면 결국 내 손해다. 스스로의 재능을 믿고 있다면 계속 꿈꾸고 도전하면 된다. 분명 지나고 나면 가장 힘들던 때가 꼭 제일 힘든 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낭떠러지에서 그의 손을 잡아준 건 언제나 축구였다. 축구를 사랑해 계속 했고 축구가 좋아 끝까지 악물었다. 희망의 상징이 되고 싶은 서인덕은 후배들에게 존재만으로 힘이 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암흑의 20대 절반을 보냈다는 그. 그럼에도 그가 웃은 건 아직 후반전이 남은 것처럼 축구 인생 2막, 3막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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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무서워하는 선배보다는 같이 축구하면 정말 재밌는 선배가 되고 싶다. '인덕이형처럼 공차고 싶다' 모두 축구가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서로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 하는 축구가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는 굉장히 불운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행복하다. 취업난이 심하다. 뛰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나는 하루 세끼 밥 먹으면서 돈도 받으며 축구도 할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20대를 딱 반으로 나누면 전반은 암흑기였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절반은 새출발의 기회였다. 암흑기 덕분에 이 순간이 빛난다. 헛으로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경험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게 된다. 또 힘든 시절을 이겨냈기에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지금처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 축구를 오래 하고 싶다.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


"인생 4막, 5막도 축구일 것이다. 서인덕 인생에 축구를 빼놓을 수 없다. 서인덕이 곧 축구다. 축구를 하는 만큼은 정말 재밌게 하고 싶다. 내가 행복한 축구를 하고 싶다. 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가 꿈이다. 팬들께서 '서인덕이 없으면 재미없다' '서인덕이 있어야 활기차더라'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다."


"많이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덕에 다시 목포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축구장에서 보여주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계속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획/인터뷰=박상호(qkrtkdgh93@naver.com)

사진=권지수, 내셔널리그, 이다희, 박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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