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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5월호] 팀과 사람人(in) 대전수력원자력 주장 하용우

2007.05.16 Hit : 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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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전 한수원은 작년과 다른 팀인 듯, 5 라운드가 지나간 지금 이미 작년의 성적을 뛰어넘고 있다. 현재 2승 1무 2패. 그런데 그 상대의 면면을 보면 더욱 놀랍다. 강릉 시청, 울산 미포조선, 고양 국민은행, 부산 교통공사, 수원 시청 등으로 모두 내셔널리그에서 내노라하는 강팀들이다. 2패 또한 고양과 부산에게 단 한골차로 석패한 것이었다. 벌써 여기저기서 대전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팀은 지난 5라운드 수원 시청을 잡으며 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쯤 되면 하위권에 머물던 팀이 올해 달라져도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5월 9일, 대전 한수원 선수단 중에서 가장 오래 대전에 몸담고 있고 현재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는 하용우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2007년, 올해로 4년차이자 주장으로서는 2년. 단연 팀의 최고참. 유독 선수들의 이적이 빈번한 리그환경에서 이렇게 한 팀에서 오래 뛰었다는 것은 분명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올해 팀이 달라진 이유와 하용우 선수의 인간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서울 가락동에 있는 숙소를 방문하였다.



1. 대전한국수력원자력

<선수단 분위기 (하나의 팀으로서..) >

“작년하고요? 많이 달라졌죠. 우선 선수단 22명중 15명이 바뀌었잖아요. 하지만 선수단 변화뿐만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달라졌죠. 우선 새로운 선수가 많으니깐 우선 선수들이 하려는 의지가 보여요. 해보자는 거죠. 감독님께서도 그러한 분위기 만들어 주시고 선수들도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작년까지만 해도 선제골 허용하면 그냥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2패한 경기들은 비록 지긴 했지만 한 골 차이 밖에 나지 않았고 뛰면서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고나 할까”


“저희는 3-5-2나 3-4-1-2를 쓰는데 작년이나 재작년 같은 경우 후반에 못 뛰었어요. 체력이 약했던 거죠. 선제골을 넣었다고 해도 항상 뒤집혔어요. 하지만 이번엔 선수들도 많이 젊어졌지만 동계 훈련도 정말 열심히 했죠. 가령 올해 어떤 팀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가 후반에 이런 소리를 하더라구요. ‘야 밀어붙여. 쟤네 못 뛰어’ 하하. 완전히 오산이죠. 완전히 바뀌었는데. 결국 저희가 골 넣고 이겼잖아요. 저희에 대한 인식이 그랬어요. 후반에 못 뛰는....작년에는 한수원은 무조건 이기고 가는 팀이다. 비겨서 돌아가도 어떻게 된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는데, 올해 같은 경우에는 생각을 잘못하는 거죠. 그뿐만 아니라 작년까진 걷어내기 바빴어요. 왜 뻥 축구라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게임을 만들어 갈 줄 알아요. 선생님께서 그런 것을 많이 요구하시죠. 왜 썰어간다고 하잖아요. 짧은 패스로 상대 공간을 보며 공격해 들어가는...그러니깐 상대편들이 어떻게 보면 자기들이 밀어붙이는 것 같은데 힘만 빠지고 저희가 이득을 보는 거죠. 수원 같은 경우도 역대전적이 많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전반에 밀렸지만 후반에 2골 넣고 이겼잖아요.”

 실제로 필자가 지난 5라운드 수원 시청과의 경기를 취재하러 갔을 때 대전의 끈끈한 수비와 번개 같은 속공에 깜짝 놀랐었다. 아직 게임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결정적인 장면들은 모두 막아내고 간간히 날카로운 속공을 보이며 결국 후반전에만 46분과 끝나기 직전인 93분에 연속골을 성공하며 수원에게 무실점 승리를 거두었다. 예상 밖의 결과였다고 솔직히 밝혔다.


“하하. 당연히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다고 하잖아요. 경기 전에 열심히 즐기고 오자. 후회 남기지 말고 오자. 그러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아요.”


“3, 4년 전하고요? 어휴~ 그때 당시와도 또 많이 다르죠. 그때는 멤버로는 최고였어요. 이름만보면 상위권 노려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축구란 것이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수원 삼성이나 FC서울은 매번 우승해야죠. 팀으로서 응집력이 있어야 해요. 제 생각에는 예전엔 운동장에 11명이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모두 제 각각이었어요. 지고 있으면 이 선수 여기서 화풀이하고 저 선수는 저기서 화풀이하고 따로따로의 느낌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다 같이 열 받고 다 같이 가죠. 그런 면에서 제 생각에도 올해는 무언가 해낼 것 같아요.”


“지금까진 좋은 것 같은데 좀 더 지켜봐야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죠. 한국은 결과주의니까.”


 축구만큼 피지컬 적으로 많이 부딪히는 스포츠도 드물지만 또한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지배된다고도 한다.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올해 달라진 모습을 설명하는 표정에서 자신감이 배어나왔다. 그리고 은연중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단면인 결과주의를 꼬집으며 자만을 경계하는 모습에서 믿음이 갔다. 하지만 추락했던 팀을 다시 끌어올리는데 수장의 역할 또한 중요한 것은 당연지사.


<선생님 (배종우 감독)>


“선생님 스타일은 운동장 들어가면 아닌 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편이세요. 훈련 때는 못하면 호통도 치시는데 그보단 묵직한 면이 계시죠. 그런데 한번정도 분위기상 확~열 받으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알아서 분위기 파악해야죠. 하하. 축구 외적인 것은 규율만 지키면 자유로워요. 그 대신 운동장에선 열심히 하라는 식이시죠. 선생님들이 다 그런 스타일이세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을 때 인간적으로 우리가 얘기를 하면 또 인간적으로 받아주세요. (대화를 많이 하시나요?) 많이 해요. 코치님 같은 경우에는 아예 저희랑 같이 생활하시니까 대화가 많을 수밖에 없죠. 정도 많으시고 운동장에서만 저희가 잘 하면 되요~^^”


“그러니까 작년 같은 경우에는 매번 졌잖아요. 저도 선수생활 초등학교 때부터 근 20년을 해왔지만 학원축구에선 시합에 지면 야단을 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애들 기죽는다고 야단을 안치세요. 전화하셔서 다독거리라고, 선생님도 힘들지만 너희도 힘들지 않느냐고 말씀하시죠. 그런데 사실 선수들이 감독님이 이러시는 것을 잘 모르는 면도 있죠. 아무튼 작년엔 정말 고생 많았었죠.”

“경기에 대한 주문은 그날그날 틀리죠. 경기분석을 하고 특징적인 선수나 작전에 대비하는 훈련을 해요. 가령 수원 전 같은 경우에도 수원의 포메이션은 이렇고 이 선수 특징은 이러니깐 너는 이렇게 해라. 이런 식으로 비디오 분석 등을 하고 팀 전체적으로 , 혹은 개인적으로 지시를 받고 출전을 하죠.”


 덕장으로서의 배종우 감독님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나도 힘들지만 너희도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팀을 감싸 안으시는 분인 것이었다. 아버지로서의 따뜻함이 그러한 것일까. 한 집안에서 아버지가 중심을 잡아주시는 분이시라면 큰형님은 아버지보다는 가깝고 살갑게 동생들을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용우 선수는...


<주장 (팀의 중간자로서..)>


“웬만하면 야단 안치려고 해요. 다들 성인이지만 아직 어린 선수들에게 야단을 치면 주눅이 들까 봐요. 게임을 지고 있는 상황에선 상대에게 주눅이 들 수도 있고 선생님한테도 주눅이 들 수도 있는데 저까지 그러면 애들이 어떻게 뛰겠어요. 실수를 해도 저는 이렇게 말해요. ‘실수가 죄가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실수한 다음에 포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한테 혼난다.’”


“제 생각에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요. ‘나 같은 경우에도 수비수니까 내가 실수를 하고 골을 먹을 수 있다. 그걸 가지고 너한테 뭐라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다음에 죄송합니다하고 다시 열심히 하는 모습보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라고 하죠. 실수가지고 야단을 치면 될 것도 안 된다고 봐요.”


“그런데 후반 막판가면 멍해질 때가 있잖아요? 하하 그땐 소리치죠. 집중하라고...후배들도 저한테 격려도 많이 해주고... 학원축구처럼 또 그렇게 못 하잖아요~하하 그래도 실업인데.... 억압을 해서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난 2패도 어린 선수들이 실수를 해서 졌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잖아요. 축구는 11명이 하는 건데...그전에 11명이 다 같이 해줬으면 걔네들이 그런 실수를 안했겠죠. 축구란 이기면 다 같이 이기는 거고 지면 다 같이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최소한의 규율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정말 싫어해요. 저희 같은 경우에 저녁 먹고 9시 30분까지가 자유시간인데 그 시간은 정말 자유예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당구장을 가기도 하고 피씨방을 가는 친구들도 있죠. 물론 그 시간에 따로 운동하러 가기도 하구요. 하지만 정해져 있는 시간은 지켜야죠. 그런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야단을 치죠.”


 하용우 선수의 축구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축구가 아닌 함께하는 축구.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너와 나, 윗사람과 아랫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더 희석되어지고 각박해 지는 사회 속에서 단체를 강조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의문은 다음 말에서 밝혀졌다. 팀 이상으로서의 존재.

“선수들 간의 관계요? 글쎄요. 지금까진 좋다고 생각하는데. 에이~ 그런데 생각을 해보세요. 저희가 지금 이 아파트 1층하고 5층을 사용하는데 22명중에 20명이 함께 합숙을 해요. 하루 종일 같이 운동하고 돌아와서 밥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또 같이 일어나고. 그렇게 하루 종일 함께하는데 어떻게 싸우면서 같이 있겠어요. 혹 싸우게 되더라도 금방 풀 수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는. 솔직히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하신 선배들이 많아서 합숙인원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어휴~ 지금도 아마 애들끼리 우르르 모여서 어딘가 갔을 거예요. 문제라면 사다리 같은 거 내기할 때 동네 시끄러워 항의가 들어오면 그게 문제가 되면 될까...뭐. 가족이나 마찬가지죠. 저희한텐.”


2. 슬럼프 (늦게 찾아온 사춘기)


“슬럼프요...그게 남들은 프로 2년차 일 때 슬럼프가 온다고 하는데 저는 입단 하자마자였나 봐요. 그게 2000년도 경희대 졸업하고 바로 포항에 1순위로 입단을 했는데요. 모르겠어요. 왜 방황했는지.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뛰쳐나왔죠.”


“사실 대학교까지는 스파르타식이었어요. 모든 것이 규율이고 꽉 짜여져 있었죠. 그런데 프로로 딱 들어오니까 모든 것이 자유인 거예요. 적응 못하고 풀어져서 생각이 많아졌나? 하하..기자님 말씀대로 사춘기가 그때 왔나 봐요.”


“2년 동안 건설업체에서 일했는데 어휴..못하겠더라고요. 운동선수들은 직설적인데 사회인들은 다들 불만이 있으면서 뒤로 감추고, 뒤에서 말하고, 말해도 돌려 말하고.. 사람이 눈치가 있으니 알긴 알겠는데 확실하지 않으니 대처가 될 수가 없죠. 정말 힘들었어요.”


누구나 한번쯤은 방황할 수도 있으나 그 시기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는 기자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성공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던 시절의 아픔을 너무도 담담히 말해 솔직히 당황했다. 그렇게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를 할 법도 한데 이 사람에겐 그보다 너무도 축구가 하고 싶었나보다. 피치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 축구에 대한 그리움, 배종우 감독님, 그리고.......가족.


“정말 갑자기 공이 차고 싶더라고요. 스스로 떠나버린 자리인데.. 한번 그런 생각이 드니까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죠. 미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씩 운동을 해보기 시작했죠. 처음엔 조깅도 하고 혼자 공 가지고 나가 하다가 친구가 대학교 감독님 한 분을 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부탁을 해서 거기에 끼어서 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지금 대전 한수원의 배종우 선생님께 말씀을 해주셨어요. 선생님께서 넌 원래 프로에도 있어봤고 잘 했으니까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지켜볼 테니까 열심히 하라고요. 그때 무슨 생각이 나겠어요. 무조건 열심히 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 기간 동안 부모님께서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죠. 경상도 분이시라 무뚝뚝하시기도 하지만 다시 했으면 하는 그런 분위기.. 아버지가 이번에 칠순이셨어요. 어머니도 다 되셨고..특히 어머니께서는 식당일 하시면서 고생하시며 제 뒷바라지 해주셨는데 얼마나 아쉽겠어요. 게다가 제가 1남 4녀 중 막내예요. 모두 누나들인데 특히 큰누나하고는 12살 차이가 나요. 늦둥이죠.”


“큰누나는 거의 저 키우다시피 했죠. 결혼하고 나서는 매형이랑 응원도 많이 오시고 뒷바라지도 해주시고.. 오죽했겠어요. 어렵게 어렵게 키워놔 이제 겨우 프로로 잘 갔다고 생각한 놈이 갑자기 뛰쳐나와 일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 땐 그런 거 잘 몰랐죠.”


“어려서 그랳나 봐요. 지금요? 하하. 지금이야 이틀에 한 번씩 전화 드리는 효자랍니다. 하하.”


3. 타임머신 (말이 없던 소년)


지금이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저출산 국가로 나아가고 있지만 우리네 부모님만 해도 왕왕 아들을 보기위해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노력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 그렇게 소중한 아들이 험하디 험한 운동을 하겠다고 했단다. 호락호락 허락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허락하신 이유가 다소 의외다.


“축구 어떻게 시작했냐고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 거죠. 웃긴 거 뭔지 알아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그만 뒀죠. 정작 저는 지금껏 이렇게 뛰고 있는데..”


“반대 많이 하셨죠. 막내인 외동아들인데다가 늦둥이인데 어련하시겠어요. 하게 해달라고 조르기도 졸랐지만 결국엔 제 성격 때문에 할 수 있었어요. 제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었거든요. 지금도 사실 그래요. 팬들은 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걸요? 말도 없고 웃지도 않으니.. 그 당시는 더했어요. 다른 친구들하고 말도 못했어요. 오로지 집에 와서 누나들하고만 있었죠. 프로로 간 뒤에 초등학교 동창들 만났는데 아무도 저를 몰라봤으니까요. 아예 기억 속에 없었어요. 그나마 해주는 말이 ‘아, 그 까맣고 축구하던 애?’ 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래서 시켜주셨던 것 같아요. 운동이라도 하면 아이가 활발하게 달라지지 않을까. 지금도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바뀌었죠. 기자님하고도 이렇게 인터뷰 할 정도이니..하하. 사실 이것도 밖에서 하시자고 했으면 이렇게 못했을 거예요. 그나마 이 정도 하는 건 여긴 제 터이니까요.”


말씀 잘 하시지 않느냐고 타박을 조금 했더니 역시나 또 하나의 가족인 팀을 이야기한다.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하용우 선수가 너무 편하게 말씀하시기에 마치 친한 형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가 느끼는 집과 같은 숙소였기에 은연중 기자 또한 동화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비로 시작했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미드필도도 했고 포워드도 했었죠. 대학 들어가면서 다시 수비수로 돌아갔죠. 학원 축구일 때는 거의 가족들이 많이 응원 오잖아요. 특히 저희 매형하고 큰누나 가족이 많이 왔었어요. 제가 사실 지금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교가를 몰랐어요. 그런데 큰누나 아이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4살이었는데 저희 교가를 외워서 부르는 거예요. 얼마나 많이 응원 오셨는지 알겠죠? 그만큼 매형, 큰누나 지원․응원 많이 받았죠.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 우승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하하”


“그런데 오히려 그 당시에 별로 느낌이 없었어요. 그 때도 주장이어서 방송에서 인터뷰도 했는데.. 음....모르겠어요. 갑자기 물어보시니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혼자 인터뷰를 해서 그런가? 말씀드렸다시피 남들 앞에서 워낙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 정신이 있었겠어요. 그냥 그렇게 묻혔던 것 같네요. 대학교 다닐 때도 우승 문턱에는 많이 가봤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제 생각엔 선수생활 최고의 시기는 포항에 입단했을 당시였던 것 같아요. 방황을 함께 해서 그렇지...하하. 그때 정말 왜 그랳을까..저도 지금까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 후회의 그림자가 잠깐이나마 스쳐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기자도 상대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취미가 없는 지라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화제를 돌려보았다.


4. 라이벌, 미래, 축구...


“글쎄요. 상대편 공격수를 막는 것이 수비수이긴 하지만 특별히 라이벌은 없는 것 같네요. 공격수를 막는 것이 저 개인으로만 막는 것은 아니거든요. 팀으로서 막아야죠. 팀으로서 막는 방법을 연습하기도 하고... 그래서 라이벌 선수랄 것까지는 없고..”


<하용우 선수가 작년에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셔서 그런 것 아닌가요? >


“하하, 에이~운이 좋았던 거죠. 과분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후배들한테..그런건 이제 후배들이 차지해야 하는 것인데..자리를 아직도 지키고 있으니 오히려 미안해요.”


“아! 하지만 라이벌 팀이라고 하면.. 라이벌 까진 아니지만 울산 미포조선을 한번 이겨봤으면 좋겠네요. 한 번도 못 이겨봐서..”


<올해는 베스트 일레븐에 욕심 없으세요? >


“아유~없어요~ 지금까지 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감사한데요. 후배들이 저보고 약의 힘으로 뛴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러고 보니 선수생활 중 큰 부상을 당한 적이.. >


“큰 부상이 다행히 없었어요. 정말 다행이죠. 앞으로도 큰 부상 없이 은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퇴 이후요..그냥 저는 작은 천연 잔디 운동장 하나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아이들 축구하게 해주고 아이들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축구하는 모습을 보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아..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요. 저는 그냥 운동장 관리하고, 구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돈 많이 버셔야겠어요.) 하하. 그러게요. 어디 산골짜기라도 들어가야 하나? 하하.”


욕심이란 것을 인터뷰 내내 찾을 수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지나간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미래 또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평화로운 사람.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 자신 밖에 모르게 될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 항상 자신보다 팀을 생각하고 후배들을 생각했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라는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사람이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만든 것은 축구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답이...빗나가지 않았다.


“축구요? 평생을 축구한 사람에게 축구가 어떤 의미냐고 물으시면..다 같은 답 아닐까요? 그냥 인생이죠. 함께 숨 쉬고 생활하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축구를 띄어놓을 수 없으니 인생 그 자체 아니겠어요?”


경기장에 많이 찾아오지 않는 관중에 대해서 아쉽다고 하면서 대전 팬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다.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곳에 오셔서 땡볕아래서 소리질러가며 목 쉬어서 집에 가고.. 사실 그분들 선수 하나하나가 한분한분 집에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연맹에 바라는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모르겠어요. 문제점들이 많아서 모르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단지 그 분들은 그 곳에서 자신의 일 열심히 하시고 저희 선수들은 저희 위치에서 열심히 뛰다보면 좋은 날 오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평생을 걸려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반면에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 된다고 한다.


하용우 선수를 2시간여 긴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그 따뜻함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2시간여의 시간 속에 조금이라도 한 사람에 대하여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을 내어준 하용우 선수에게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고 싶다.


더불어 올해 좋아진 팀 분위기만큼, 피치위에 뿌린 땀의 양만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성과 거두었으면 좋겠다. 대전 한수원 파이팅! 하용우 선수 화이팅! 


내셔널 리그 명예기자 심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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