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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8월호] 내셔널리그 바로알기 (1)

2008.08.14 Hit : 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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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바로알기 1편>
 
한국축구의 새로운 돌파구 아마추어 리그

내셔널리그, k-3리그는 소위 말하는 아마추어 리그이다. 관중은 채 5000명이 안넘고, 서포터 수는 100명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고 볼 만한 용병 선수나 스타급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명 속에 모여 삼삼오오 훈련을 하고 경기에 나선다. 때로는 프로팀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세간의 이목을 아주 잠시나마 주목시키지만 유지시킬만한 명목이나 이슈가 없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아마추어 리그에서 정체되어 있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다.
 
실업축구대회
 
아마추어 리그의 변천사라고나 할까?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다. 흔히 말하는 군사정권 시절 스포츠 양성을 통한 정권 부정축소 및 왜곡, 쉽게 말해 국민의 관심사를 스포츠로 돌리려는 정부의 방침으로 탄생된 팀들이 모여서 대회를 펼친 것이 실업축구대회의 시작이었다.


주택은행, 국민은행, 대우, 할렐루야, 이랜드, 포항제철 한국전력(현 대전한수원자력)등의 실업 축구단과 대학 팀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공식 명칭이 당연하게도 대통령배 축구대회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만든 이 대회는 초창기에는 국제대회였으나 후에는 전국대회로 변화했다).


과거 스포츠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에 부적합한 운영방식이나 대회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제 5공화국 시절 군사 정권의 주도로 1983년 프로 스포츠가 탄생하면서 축구 역시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대회가 만들어졌다. 기존 실업 팀에서 프로팀으로 전향해 축구에 투자를 하고 싶었던 기업들이 프로연맹에 가입을 하고 새로운 팀이 만들어지면서 실업축구리그는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프로축구 출범으로 토사구팽이 되어버린 실업축구팀들은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하나 둘씩 속속 해체됐고 그저 실업축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진정 토사구팽을 당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너무나 쉽게 프로축구에 열광했고 결국 이 때부터 실업축구대회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명을 갖게 됐다.
 
k2리그

하지만 명맥을 유지하던 고양국민은행, 강릉시청, 상무, 서산시민, 서울시청, 수원시청, 대전한수원, 한국철도, 의정부험멜, 울산미포조선 등이 실업축구연맹에 합류하면서 실업축구연맹은 리그 명을 ‘k2리그’ 로 정하고 총10개 팀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하나의 리그를 탄생시켰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저변 확대와 풀뿌리 축구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비록 2003년 생겨난 리그일지라도 k2리그는 k-리그를 뒷받침 해주는 든든한 지원자이기도 했다. 월드컵 이후 지속된 축구 열풍으로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던 실업축구연맹은 2006년 프로연맹과의 승강제도를 추진하였고 축구인들은 승강제도가 현실로 다가오자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다.
 
내셔널리그

2006년 승격제가 확정되며 실업축구연맹은 내셔널리그 연맹으로 단체명을 변경하며 공식 내셔널리그가 출범하였다. 승격제를 실시하는 첫 대회인 만큼 각 팀들의 의욕도 대단했고 부산교통공사가 창단해 리그에 참여하는 등 대외적으로 그 관심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고양국민은행의 리그우승과 FA컵의 선전으로 축구팬들에게 고양국민은행이 프로무대에서 보여줄 경기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양 국민은행의 승격거부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대한축구협회와 내셔널리그 연맹은 고양에게 중징계를 내리며 성난 여론을 달랬다. 하지만 2007년 울산 미포조선 역시도 승격을 거부하며 내셔널리그 연맹은 승격제를 폐지하고 2010년 이후로 프로 2부화를 기약하게 되었다.


[글_ 우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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