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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월호] 안산 신재필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2012.04.12 Hit : 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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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쫓던 아이, 안산H.FC의 전설이 되다.




▲ 지난해 중남미 원정 투어 중인 신재필. Ⓒ 안산 H.FC



축구선수의 꿈을 품고 있던 한 아이가 있었다. 막연히 공차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막연하게 축구선수를 생각했다. 마침 담임선생님께서 체육선생님이었고 아이의 소질을 알아보고 기회를 열어줬다. 그렇게 아이는 축구를 시작했다. 안양공고를 졸업할 땐 대학이고 프로팀이고 간에 서로 그를 모셔가려고 경쟁했다. 결국 그는 프로팀인, 안양 LG 치타스(FC서울의 전신)로 직행했다. 그는 더 큰 꿈을 위해 대학보단 프로팀을 선택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녹록치 않았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에 지치고 힘들었다. 꿈을 위해 경찰청에 입대하고서도 그는 독하게 훈련했다. 그러나 제대를 한 달 앞두고 부상이 찾아왔다. 소속팀 서울FC로 복귀했으나 부상을 당해 운동조차 할 수 없었던 그를 위한 자리는 이미 없었다.


방황하던 그는 이영무 감독의 제안에 생각에도 없던 내셔널리그 김포 할렐루야(前안산 H.FC)에 둥지를 텄다. 꿈보다는 그라운드가 절실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한풀이를 하듯 내셔널리그 데뷔 첫해 그는 팀의 모든 공식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그 후 그는 팀이 연고지를 안산으로 옮기고, 팀명을 안산 H.FC로 바꾸는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안산 H.FC의 레전드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미 레전드다.



안산 H.FC의 중앙 미드필더, 신재필의 이야기다. "아마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기회를 열어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축구선수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 할 때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그는 이제 안산 H.FC소속 100경기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내셔널리그에선 흔치 않은 대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 험난한 프로의 길.




▲ 안양LG 소속 당시. 밑에서 가장 오른쪽이 신재필. (신재필 선수 본인 소장 사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신재필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여러 대학, 프로팀에서 많이 제의가 왔어요. 고등학교 때 썩 잘 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정말 좋았죠. 계약금까지 받고 프로팀에 가게 됐으니(웃음).” 졸업을 앞두고 여러 대학교와 프로팀에서 그를 데려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특히 신재필에 대한 안양LG의 구애는 적극적이었다. “감독 선생님께서는 프로로 바로 가는 것을 반대하셨어요. 직접 프로팀에 말씀도 해주셨어요. 대학에 갔다가 프로로 갈 거라고. 근데 안양LG가 진짜 적극적이었어요. 무조건 자기네 팀으로 보내달라고...” 그렇게 프로 행을 만류하시던 감독 선생님을 뒤로 한 채, 그는 과감히 안양 LG 치타스(이하 안양LG)의 유니폼을 입었다. 대학교까지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바로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기를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프로의 세계는 녹록치 않았다. 당시 안양LG는 우승을 한 다음해로 최고의 선수구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갔는데 당시 LG에 선수구성이 워낙 좋았던 거예요. 그때 최용수, 이영표, 왕정현, 김성재 같은 선배들이 뛰고 있었고, 내 바로 위에는 김동진, 최원권, 박영호, 최태욱 같은 올림픽대표 출신들이 쫙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게다가 포지션이 중앙미드필더인데 어리니까 기회를 거의 안주셨어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선수에게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어야 할 중앙미드필더 자리를 맡겨주진 않았다.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경찰청에 입대하기 전까지 3년간 안양LG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안양LG에 있는 동안, 어린나이에 정말 이를 악물고 독하게 운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는지 자기 뒤에 들어온, 중학교를 중퇴하고 입단한 선수들이 저를 유독 어려워했어요.(웃음)”라며 힘든 시기를 회상했다.


결과론적인 가정이지만, 만약 그가 대학교를 거쳐 프로로 진출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까. 대학으로 갔더라면 더 많은 경기를 뛸 수 있었을 테고, 더 나아가 올림픽대표팀에 승선할 수도 있는 기회가 찾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에 그는 “솔직히 당시에 2군 생활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너무 힘들었으니까.”라고 운을 뗀 뒤, “대학으로 바로 갔더라면 주전으로 계속 경기에 나서면서 대학선수 위주로 선발되는 올림픽대표에도 오가며 뛸 수도 있었을 거예요.”라면서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많이 배웠어요. 훈련도 열심히 했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어요.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렇게 큰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 그에게 닥친 불운, 그리고 내셔널리그...



“경찰청에 입대하고서도 독하게 운동했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안양LG에서의 3년을 2군에서 보낸 후 경찰청에 입대한 그는 더욱 독하게 마음먹었다.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부분 군대 입대하면 쉬어가자라는 마음을 먹는데, 저는 안 그랬어요.”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전역 후 돌아갈 프로무대뿐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운이 찾아왔다. 전역을 한 달 앞두고 뛴 연습경기에서 새끼발가락이 골절된 것이다. 부상을 당한 몸으로 돌아간 소속팀은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고 코칭스태프가 모두 바뀌어있었고 단지 그때까지 남아있던 이영진 코치만 그를 반겨줄 뿐이었다. 이적을 고려해봤지만 부상을 당한 몸에 소속팀에서 이적료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모두 무산됐다. 그 후 곧, 그는 감독으로부터 방출통보를 전해 듣게 됐다. 이리저리 팀을 알아보던 중,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영무 감독의 본격적인 구애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내셔널리그에서 뛸 거라고는...” 이영무 감독의 제의를 몇 번이고 거절한 그는 자신이 내셔널리그에서 뛸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전역 후 뛸 팀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그에게 이영무 감독의 제의는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이영무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1년만 뛰기로 결심한다. “모르겠어요. 무슨 마음으로 그 제의를 덜컥 받아들였는지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가 내뱉은 말이다. 아마 당시의 그는 프로의 꿈보단 그라운드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컸으리라. 그렇게 그는 내셔널리그와 인연을 시작하게 됐고, 안산 H.FC에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 울고 웃은 데뷔 첫해. 나의 팀 그리고 우리 팀...




▲안산 H.FC 퀸즈컵 우승 당시 기뻐하는 선수들. Ⓒ 안산 H.FC



안산 H.FC에서 선수생활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물음에 그는 모두 2006년 데뷔 첫해를 기억해 냈다. “할렐루야에 들어가고 리그가 시작하기 전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통령배 축구대회’에 출전을 했어요. 그게 데뷔무대였죠. 꽤 큰 대회였어요. 내셔널리그 팀, 대학팀, 그리고 가끔 프로 2군팀도 출전을 했었으니까요.” 그의 데뷔무대는 지금은 없어진 대통령배 축구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안산 H.FC(당시 김포할렐루야)는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안산 H.FC는 4강에서 전년도 우승팀 울산현대미포조선을 꺾고 결승에 올라, 신생팀 부산교통공사를 연장 혈투 끝에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선제골을 내주고 뒤지고 있던 경기를 역전까지 만들어내 승리를 거뒀는데, 결승골을 뽑아낸 선수가 신재필, 바로 그였다. 그 대회 우승은 안산 H.FC가 18년 만에 ‘대통령배 축구대회’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굉장히 좋았어요. 따지고 보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무대에 5년 만에 데뷔하게 된 거잖아요. 근데 우승까지 했고요. ‘나의 팀, 우리 팀’에서 경기를 뛴다는 기쁨이 컸고 열정이 막 생기더라고요. 비록 K리그가 아닌 내셔널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우리 팀에서 경기에 나서는 것에 대한 기쁨을 새삼 깨달았어요.”라며 당시 축구선수로서의 인생 2막이 열릴 때의 기쁨을 회상했다.



▶ 눈물 젖은 준우승 메달.



그해 열린 내셔널리그에서 안산 H.FC는 후기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을 거뒀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고양국민은행이었다. “그때 우승을 하는 팀은 프로로 승격 한다고 할 때였거든요. ‘아! 그럼 내가 여기서 우승해서 승격하면 프로선수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죠.”(웃음)



그러나 안산 H.FC는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0-0으로 무승부를 거두고 2차전에서 2-1로 아쉽게 패배해 준우승을 거뒀다.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2-1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었는데 오프사이드 판정이 났어요. 근데 나중에 비디오 판독을 해보니 오프사이드가 아니더라고요. 그게 순수한 오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너무 아쉬웠죠. 경기 후 센터서클에 모두 모여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못하고 전부 울고 있는 거예요. 너무 억울하니까. 거의 30분 동안. 너무 아쉬운 마음에 자리를 뜨지도 못하겠고. 축구하면서 그렇게 울어 본적이 없어요. 이제 그만 가자고 선수들을 데리러 온 코칭스태프들도 다들 울고 있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축구선수로서 경기를 뛰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한 경험을 한 2006년 그의 내셔널리그 데뷔는 그에게 새롭게 축구에 대한 감동을 일깨워 줬다. 그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콧등이 시큰해 진다. 1년만을 생각하던 안산 H.FC에서의 생활을 그해 이후 5시즌 째 이어가고 있다. 한순간도 놓지 않고 있던 K리그 진출의 꿈도 그러한 감동 앞에선 그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안산 H.FC의 신재필, 100경기 출장의 금자탑.




▲ 안산 H.FC소속 100경기 째를 맞은 수원시청과의 경기 당시 기념식에서. Ⓒ 안산 H.FC



신재필은 지난 3월 16일, 2012 신한은행 내셔널리그 2R, 수원시청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장해 풀타임 소화하며 안산 H.FC 소속 총 100경기 출장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나이를 많이 먹었네요.(웃음) 100경기 오는 동안 이영무 감독님, 인창수 코치님, 이성길 코치님의 믿음 덕분에 이렇게 많은 경기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은 추억들, 많은 경험들이 스쳐지나 가네요.”라며 100경기 출장의 소감을 풀어냈다.



“이런 팀이 또 없어요. 정말 가족같은 분위기에요. 물론 고생도 많이 했죠. 구단 사정이 넉넉지 않다보니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친정팀이 좋네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요. 남은 선수생활도 이곳에서 뛰고 싶어요. 앞으로 팀이 프로에 진출하게 돼서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팀의 비전속에서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그는 현재 안산 H.FC에서의 선수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팀의 좋은 시절을 같이 이끌었던 절친 오기재도 현재 안산 H.FC에 돌아와 친정팀의 명예회복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쏟고 있다.



▶ “아직 나이는 있지만, 더 큰 꿈을 갖고 있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안산 H.FC는 내년부터 시행 될 K리그 승강제와 더불어 프로리그에 진입하겠단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재필 개인적으로는 K리그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팀의 막내 신인선수로서가 아니라, 팀의 주축이자 주장으로서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안산 H.FC에서 뛰고 있는 건, 정말 순수한 열정과 꿈이 있기 때문이에요. 금전적으로 좋은 대우 받으면서 다른 팀에서 뛸 수도 있겠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팀이나 저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순수한 열정과 꿈이 지금 여기까지 저를 이끈 것 같아요.” 그는 경기 시작 전의 긴장감을 즐기고 있다. 그는 아직도 피치 위에 서면 가슴이 설렌다.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지도를 보지 말고 나침반을 봐라.”라는 말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분명한 목표를 향해 방향만 정확히 잡고 나아간다면 길을 잃거나 해맬 일이 없다. 신재필의 목표는 안산 H.FC 소속으로 100경기를 뛰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그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안산 H.FC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글=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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